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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간호사를 원한다면

되도록이면 원하지 말라

by 김윤섭

학생 간호사로서 병원에서 의무 실습 1000시간을 채우는 시간 동안, 그리고 취업에 성공 한 뒤에 병원에 첫 출근을 하기 전까지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라면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너 원티드 어디 쓸 거야?' 원티드란 희망부서를 의미하는데, 간호사의 경우 일반적으로 취업 준비 시 병원에 제출하는 서류에서부터 본인이 희망하는 부서가 어디인지 1-3 지망을 제출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경우엔 부서 배치 전 원내 교육을 받는 동안 마지막으로 한번 더 희망 부서를 제출한다.


나의 경우엔 실습을 할 당시에도 그렇고 병원에서 인턴쉽 과정을 거치면서도 마찬가지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동일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크게 고민을 하지 않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내가 실제로 그 부서에서 일을 해본 것도 아니었고 아무리 실습 및 인턴쉽 과정을 거쳤다고 한들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미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희망 부서를 고를 당시의 가지고 있던 확고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망설임도 없이, 모든 1 지망은 '응급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희망부서에 배치되었지만 역시나 실제로 내가 일을 하는 것과 상상은 영 달랐지만 말이다.


난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의무경찰로 군 복무를 하면서 공무원들의 반복된 일상이 나에겐 굉장히 맞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물론 나는 시위 현장에서 근무하였지만, 또한 내가 생각보다 관심 있어하는 분야가 굉장히 많음을 느꼈다. 복학을 한 뒤에 한껏 지식욕이 흘러넘쳤을 당시 나는 거의 모든 과의 지식을 탐내며 도서관에서 한 번에 4-5권의 책을 펼쳐놓고 공부를 하기도 했다.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르지만 그 과목은 복학 한 뒤 4학기 모두 A+였을 정도였으니. 각설하자면, 이런 나라는 사람의 성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실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건대 가장 어울릴 만한 부서는 응급실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매일매일 다른 군의 환자를 볼 수 있다는 점과 항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일을 한다는 점이 나에게는 남들과는 다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매력적인 점이 정말로 나에게 매력적이게 작용하는 데에는 굉장히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건 일을 해보고서야 체감할 수 있었다.


입사를 하고 많은 친구들이 나에게 물어왔다. '그렇게 원했던 부서에서 실제로 일하니까 어때?, 가장 힘든 게 뭐야?'. 그런데 정말 웃기게도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신규 간호사에게 매일매일 다른 군의 환자를 담당하는 것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일지는 간호사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병동과는 다르게 간호사가 하는 술기의 영역이 훨씬 더 넓기 때문에, 혹은 밀려 들어오는 환자 수에 비해 손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우리가 할 줄 알아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걸 처음부터 시행할 수 있어야만 했다. 장담하건대, 응급실은 신규 간호사에게 가장 진입장벽이 높은 부서일 것이다.


그렇게 허덕이고 있을 때에 많이 받았던 또 다른 질문은 '부서 선택을 하고 싶은데.. 응급실 어때요?'였다. 많이들 '칼출, 칼퇴'를 할 수 있다는 점과, 대중 매체에서 다루는 응급실이라는 곳의 이미지로 인해서 응급실을 선택하려고 한다. 확실히 이 쪽 분야는 어렸을 때부터 대중매체에서 다루는 이미지가 있다 보니 로망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응급실 간호사를 고민하고 있는 그대들에게 말하건대, '칼퇴'란 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신규 간호사'라면 그 범주에 속해있지 않다. 그건 어느 부서나 마찬가지이다. 다른 부서에 비해서는 빠르게 퇴근을 할 수는 있겠다만 어차피 같이 일을 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는 나와 같이 일을 하는 동료 간호사들이 퇴근 시간의 기준이 될 것이며 그 사람들 보다야 당연히 늦게 퇴근을 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기준에 넣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어떤 로망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로망이란 허구에 불과하다. 분명 간호사도 의료 행위를 하는 '직업'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일'을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간호사의 경우 실습을 하고서 바로 취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내가 정말 직장인이 맞는지, 내가 과연 내 앞에 놓인 환자들을 돌볼 수 있는 의료인이 맞는지를 실감하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그 로망이 정말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로망이 로망이 되기 까지 많은 고난과 시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아마 이미 선택을 해버린 한참 뒤일 것이다. 그러니 단순히 대중 매체에서 보인 로망을 가지고 응급실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그 역시 난 추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본인이 응급실 간호사를 희망한다면 본인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쯤 깊게 고민해보길 바란다.

1.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확고한 취미가 있다.

2. 본인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다. (감정 컨트롤의 부분)

3. 임기응변에 능하다. (응급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인관계 부분에서를 뜻한다.)

4. 빠른 일처리도 좋지만, 디테일한 부분을 놓치는 것도 싫어한다.

5. 정말 집에 당장 가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지처도, 일이 빨리 끝나는 것을 더 선호한다.


현직에 있는 간호사들이라면 다 눈치챘겠지만, 위의 5가지는 응급실 간호사로서가 아니라 간호사라는 직업 자체에도 모두 적용된다. 다만 내가 느끼기에 그 비율이 좀 더 높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5가지 중 3번의 경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응급실은 모두가 굉장히 급성기의 상태로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텐션이 업 되어 있다. 그리고 대게는 부정적인 쪽으로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 배가 터져버릴 것처럼 아픈 사람에게 '일단 진정하시고요.'라는 말은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잘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야 응급실 간호사에 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허덕이며 꼬박 1년 정도가 지났을까, 드디어 내가 생각했던 응급실을 희망했던 나만의 이유들이 나에게 실제로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2년 하고도 8개월이 지난 지금 시점엔 꽤나 만족하며 '응급실이 그래도 좋지.'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나라는 사람 자체는 아직 응급실 간호사로서는 굉장히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응급실이라는 곳이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 자체에 대해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이 길을 시작하려고 하는 모든 학생 간호사 선생님들과, 혹은 아직 희망 부서를 고민하고 있는 예비 신규 간호사 선생님들 중 응급실 간호사를 희망하는 분들이 있다면 담담하게 권고한다.


웬만하면 다른 부서를 선택하기를.

그럼에도 응급실을 희망한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사진출처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42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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