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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Oct 25. 2021

이름을 불러야 꽃이 됩니다.

저희의 진짜 이름을 불러주세요.

 상대방의 인성이 어떤지 판단하는 데에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기준으로 두곤 한다. 특히 이 부분에 민감한 이들은 상대방을 대할 때의 어조나 선택하는 단어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는 부분이 바로 '호칭'이 아닐까 싶다. 직장에서는 직함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동료들 상호 간에 호칭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은 따로 없지만, 일반인을 대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객'과 '주'사이 상호 호칭에는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직업일수록 어떻게 불려지는가가 일하는 사람에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나를 제대로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나는 그 직업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호칭은 단순히 상대방을 부르는 의미를 넘어서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상대방의 존재를 그 자신에게 인식시키는 역할을 한다. 내가 여느 직업을 행하고 있을 때에 그 행위를 동사화 시킨 호칭이야말로 내가 실제로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철학적인 이야기 일 수 있는데, 쉽게 말하면 '호칭'은 상대방의 '자존감'과 동일하다.  


 간호사로 일을 하다 보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아가씨, 언니', '삼촌, 아저씨, 총각'이라고 부르는 걸 자주 들을 수 있다. 나 또한 아저씨라는 호칭에 '전 아저씨가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였던 적이 있는데 웃기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아 미안해요, 총각.'이었다. 물론 그 대답을 듣고 상대방이 선택한 그 언어의 기준은 '연령대'였음을 추측할 수 있겠으나 간호사에게 불려지는 호칭은 그와는 범주가 다르다. 엄밀히 '간호'라는 전문적인 의료 행위를 하는 사람으로서 '간호사 선생님'이라고 불려지지 않는 것은 같은 의료계에서 굉장한 차이를 느껴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타 의료진에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그렇게 얘기한다 한들 그런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큰 대우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그저 원래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길 원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애초에 '간호사'라는 전문인으로의 직업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간호하다'라는 동사화되어 있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기에 '간호사'로 불려야 함이 마땅하다. 아직까지도 '아가씨, 언니'등으로 부르는 사람들을 더 이상 '나이가 있으시니까.'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간호계에는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 얻어내야 할 것들이 아직까지도 굉장히 많다. 차근차근 바로잡아 나아가야 하겠지만, 가장 먼저면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 직업에 대한 인식 자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외국에 나라를 빼앗기고 우리의 이름을,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잃었을 때 가장 먼저 우리는 '언어'를 되찾으려고 했었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현장에서 '간호사라고 불러주세요.'라는 말에 '그냥 언니라고 해도 알아듣잖아요.'라는 말은 듣지 않았으면 한다. 


 태양이 태양이고, 달이 달이며 꽃이 꽃일 수 있는 이유는 누구 하나 빠짐없이 그 이름 그대로를 인지하고 부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무궁화가 무궁화가 아니었던 적은 없다. 태극기가 태극기가 아니었던 적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간호사이고, 우리가 간호를 행한 환자들에게 간호사가 아니었던 적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호사로 불려야 함이 마땅하다. 


 여러분이 저희의 이름을 불러주시기 전에도 저희는 간호사였었지만, 이름을 불러주신다면 여러분의 간호사가 될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http://www.d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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