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절대로 용납할수 없던 귀농이었다. 점점 마음이 풀렸을 때에도 은퇴후에나 할 일이었다. 어느날 삽질하는 남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귀농을 예견했었지만, 그때 조차도 몇 해후에나 하게될 일일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은 낮이고 밤이고 귀농만 생각하더니, 결국 눈앞의 현실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가 부동산을 공부하고, 해외이민을 알아보는등 다른 인생2막을 생각할땐 그리도 더디더니, 귀농은 정말 마음먹은 순간부터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운명인가 !?
아이들을 위해서도 시골살이는 좋을 일이었다. 시댁이 시골인 덕에 우리 아이들은 시골에서 노는게 자연스러웠다. 사교육을 따로 하지 않고 키우고 있기 때문에 학군은 별 의미가 없었다. 우리집 꼬꼬마 세아이는 시골이야기만 듣고도 좋아했다.
"우리 진돗개 키울수 있는거야? 아빠 고양이도 사줄거지 ? "
망고농사를 짓겠다고 진도탐사를 갔을때 , 진돗개 테마파크에서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진돗개 강아지들은 정말 귀여웠다. 꼬꼬마 세아이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진도에 꼭 다시 와서 토종 진돗개를 분양받아 가자고 약속했었다.
"닭도 키우자... 매일 건강한 유정란을 먹는거야. 시골친구놈이 좋은 토종닭을 분양해 준다고 했어 "
"아빠 우리 꽃밭도 만들까? 매일 모닥불 피워 고기도 구워 먹자? "
나를 뺀 모두가 들떠 있었다.
'에그 촌놈들...'
농사법을 가르쳐 줄 선배농가를 만났으니, 우리는 결정을 해야 했다. 말이 고민이지, 이미 남편의 마음이 기울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조금 천천히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만, 상황이 그리 달라지지는 않았을게다. 1년이라는 시간만 지날뿐. 그렇게 농장을 몇번 더 왔다 갔다하며, 결국 우리는 집을 내놓기로 했다.
그 아파트는 나름 천안의 메카에 위치하고 있어, 입지좋기로 소문난 25평 아파텔이었다. 우리가 이사갈 뻔 하기도 했던 곳! 나름 애정이 있었는데, 팔아야 했다.
남편은 눈앞의 기회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분들의 도움 없이는 우리가 감내해야 할 일들이 참 많았다. 대지를 찾아 계약을 해야 했고, 그 후엔 회사를 그만두고 하우스를 짓고, 나무를 심어야 했다. 아무리 서둘러도 6개월 이상은 걸릴일이 었다. 그 후 농장일을 습득하며 열매수확까지 짧아도 2년은 걸린다. 그 시간동안 고정수입이 없다는 것은 큰 고민꺼리였다. 눈앞에 다가온 기회는 그런 시간들을 대폭 줄여 줄 수 있었다. 판로까지 이미 확보되어 있었으며 , 무엇보다 농사법을 배우기 위해 다른농가에 일꾼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거다. 그야말로 황금같은 기회! 우리가 고민하던 모든것들이 해결되는 순간인 것이다. 우린 이제 농장을 짓고 그분들 옆에서 배우기만 하면 되는거였다. 물론 우리도 그분들을 도와야 했고, 소정의 댓가는 지불하기로 했다.
새로운 기회를 열기위해선 , 선택을 해야했다.
" 여보세요? 1203호 임대인이시죠? 이집 월세계약 끝나가죠? 집찾는 사람이 있는데 팔생각 없어요?
몇달전 내놓았을땐 살 사람이 없어 전화 한통화가 없더니, 갑자기 집을 팔라는 전화들이 여기저기서 오기 시작했다.
" 회사에서 일하는데 계속 부동산에서 전화가 오더라구 "
" 그동안 그렇게 잠잠하더니 갑자기 무슨 일이야?"
2년전 분양받은 그 아파텔은 옆 아파트들이 크게 오를 동안 가격이 동결되어 있었다. 입지가 좋아 충분히 가능성이 많은 곳이 었음에도 아파텔이라는 이유때문에, 투자자들이 아닌, 실수요자들에겐 인기가 별로 없었다. 오랫동안 잠잠해서 답답함을 안겨주던 그곳이, 갑자기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 서울 부동산규제가 심해져서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대 "
집을 팔라는 부동산과, 가지고 있으면 더오를테니 기다리라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갈팡질팡했다. 그렇게 한번의 기회를 보냈다.
" 어쩌지?"
계속 고민만 하다 보면 시기를 놓쳐 1년을 그냥 지나쳐 버릴수도 있는거였다.
폭풍같은 고민을 했지만, 부동산에서 걸려오는 몇번의 기회들을 마주하고 우린 결국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우리가 고민하는 사이 , 2주만에 딱 3천만원이 올랐다.
그래도 다행이었던건... 2주전에 팔지 않은것.
두가지 마음이 들었다. 가격이 이제막 오르기 시작하는 시점에 팔게 되어 너무 아깝다는 생각과, 일이 잘되려고 팔기직전에 3천만원이나 올랐구나, 하는 긍정적인 생각 ! 우린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 후로 아파텔의 가격은 찾아본적도 없다. 일단 선택하고 저질렀으면 후회하지 말아야 했으니까.
" 그래도 하기로 마음먹은건 하자! "
남편이 성급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말릴 수도 없었다.
이제 집을 내놓았으니 땅을 알아보아야했다. 부동산에 전화를 돌려보았지만 그런 대지를 대여해주겠다는 사람은 좀처럼 구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땅값이 싸지도 않은 천안근교의 땅 4000평을 살 형편도 되지 않았다. 땅값도 땅값이지만 20개동의 하우스시설비도 만만치가 않았다.
귀농을 처음 결심했을 때, 귀농하기 좋은 전국의 지역들을 살피던 때가 있었다. 어디가서 살게될 지 모를 막연함 !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에 가서 살아야 한다는 것. 생각만으로도 착찹해지는 일이었다. 그런데 결국 근처로 가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바쁠땐 친척들의 도움도 받을수 있고, 아이를 맡길수도 있다. 보고싶은 사람이 있을때 언제든지 만날수 있다. 여러모로 좋았다.
나는 이제 시골에가서 진짜 농부가 되는 것이다. 이제는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좋은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저 땅끝마을 까지 내려가지 않은것 만으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만큼 감사한 현실이다. 산속 깊숙히 들어가는 것도 아니요. 차만 타면 친정집에 20분만에 올 수있으니, 더이상 불만이 있을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