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헤는 순수주의자

윤동주

by 갈잎의노래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윤동주문학관이 있다. 인왕산 자락에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주변에 맞대는 건물 없이 홀로 떨어져. 이 기념관은 특이하게도 수도 가압장과 물탱크 구조물을 개조해서 지었다. 수도 가압장이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물살이 세게 흐르도록 하는 수로 장치이다. 윤동주의 치열한 정신이 나약한 시대에 큰 울림을 던진다는 것인가.


윤동주는 어둠의 시대에 한줄기의 빛을 열망했다. 억압의 시대에 치열하게 스스로를 성찰했다. 엄중한 시대를 진지하게 대면한 사색적인 시인이다. 그는 광폭하고 혼탁한 시대에 티 없는 순수성을 그리워했다. 한 점의 순수체로 침잠하고자 했다.


어찌 보면 윤동주는 결백주의자며 순수주의자였다.

때 묻은 시대 치욕의 흔적을 묻히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애처롭게 방황했다.

현실을 직시하며 시대를 사색하고 철저히 자아 성찰에 몰입했다.


그의 시의 대부분은 어떤 시적 대상물을 음미하거나 탐미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 속에서 치열하게 시대를 고민하고 번민한 독백이자 고백이었다.


암울한 세상이자 강압의 시대였던 일제 강점기는 그를 짓누르는 운명의 늪이었다. 그는 어둠과 굴욕, 절망과 좌절의 현실 앞에서 시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세상 오욕에 물들지 않으려고 시를 통해 심신을 추스리며 한줄기의 위안을 갈구했다.

윤동주의 시에는 잠시도 자아를 방기 하거나 안일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섬뜩함이 담겨 있다. 삶의 매 순간마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채찍질한다.


<새로운 길 >

...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동주의 삶의 여정은 잠시도 멈춰 있을 수 없다. 그는 항상 새로운 길을 꿈꿨다. 아니 현재에 머무르는 자신을 늘 담금질했다. 미지의 길, 동경하는 세 세상에로 끊임없이 나아가야 했다. 현재는 어두운 시간이었기에, 순수가 훼손된 불순한 시대이므로 이 상황을 하루 바삐 벗어나고 자 안간힘을 다했다. 밝은 빛이 비치는 세상으로, 자아의 순수성이 보장받는 세계를 향해.

<서시>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한 점의 부끄러움도 그에게는 치욕이다. 완전무결과 절대 순수를 지향했다. 흠결 투성이로 범벅된 불순물이 팽배한 상황에서 자신의 정신적인 순백을 지키려고 몸부림쳤다. 암담한 미래와 암울한 현실 앞에서 그는 역설적으로 완전무결한 순수를 열망했다. 누구를 위한 순수이며, 무엇을 위한 결백이었던가. 어둠을 떨치고 빛을 갈구하는 구도자의 순수이자, 비인간화의 시대에 인간의 품격을 지키고자 절규하는 외침이 아니었을까.


<십자가>

...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동주는 고된 민족적인 수난기에서 기꺼이 순교자의 자세를 채비한다.

절박한 시대에 자신이 나아가야 할 생의 좌표를 담담히 숙고하고 있다. 암울한 시대 상황에 늘 괴로워했던 사나이는 시대의 아픈 상황을 회피하지 않는다. 시대의 요구에 기꺼이 희생적으로 동참하고자 결의한다. 십자가를 져야 할 운명이 자신의 명운임을 안다. 어두운 시대가, 참담한 세상이 자신의 저버림을 요구한다면 그 부름에 머뭇거리지 않고 응하겠다는 자기 선서이자 결단이다.

<쉽게 씌어진 시>

..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시인으로서 스스로의 모습을 자책한다. 역설적으로 시인임에도 시가 줄줄 잘 씌여지는 것에 대해 오히려 부끄러워한다. 왜냐하면 어두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뭇 민초들이 고된 삶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시가 쉽게 씌여진다는 것은 자신의 시상에 시대의 고민과 역경을 온전히 담지 못했기 때문으로 자각한다. 민족의 고난의 현실과 유리된 자신을 질책한다.


역사와 상황을 떠나 나 홀로 누리는 안일과 평안은 윤동주에겐 죄스러울 따름이다. 시대의 질곡을 자신이 떠맡아야 할 운명의 짐으로 인식할 때 시인은 비로소 시인이 되는 것이며 시는 이제야 시다운 시로 탄생하는 것이다.


윤동주의 순수주의는 속칭 세상만사와 담쌓고 예술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순수파와는 결이 다르다. 윤동주의 순수는 세상 속에서 추구되었고 속세 한가운데에서 갈망되었다. 암울한 시대의 어둠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면서 그 가운데에 자아 존재의 순백을 집요하게 찾아 나섰다.


‘모난돌이 정 맞는다’고 적당히 시류에 편승해서 시대와 타협하며 일신의 안일을 꾀했으면 생의 고뇌와 갈등도 그다지 크지 않았으련만 동주에게는 적당한 삶이란 애초에 없었다. 그의 내면이, 그의 영혼이 현세와의 적당한 타협을 허용하지 않았다.

사진첩을 보면 동주는 거칠거나 강한 면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 다소곳한 표정과 그윽한 눈매를 지녔다. 약간은 나약한 인간의 전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부드러운 외현 속에 강한 내공을 축적해 갔다.


윤동주의 삶에서 참선에 정진하는 스님과 같은 치열함이 엿보이고, 세상을 구하려는 구도자의 간절함이 와닿으며, 먼길을 떠나는 순례자가 짊어진 수행의 고단함이 어른거린다.


윤동주의 고뇌어린 시상(詩想)은 세상 업보에 지친 이들에게 위안이 된다.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깊은 위로를 건넨다. 마치 고해성사하듯 자아를 오롯이 드러내는 실토의 시구들은 깊은 사색 속에서만 얻어질 수 있는 통찰의 언어들이다.


동주는 후쿠오카 감옥에서 1945년 2월 절명한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조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광복의 환희를 6개월 목전에 두고.


불순이 순수를 제거하려 했지만 순수는 불순에게 무릎 꿇지 않았다. 유품으로 윤동주의 시가 되살아나 역사의 증거로 증언한다. 암흑의 시대에 비췄던 한줄기의 신념이 지금 우리 앞에서 눈부시게 시적 언어로 빛나고 있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로 짜인 문자가 일상생활의 소통 언어로 강제될 때 윤동주는 우리의 문자를 고이 품었다. 민족의 혼이 깃든 한글로 하늘을 사색하고 바람을 노래하며 별을 얘기하고 시를 읊조렸다.

동주의 순수한 저항은 안중근이나 윤봉길 같이 침략 원흉들을 단죄하는 우국지사의 결기와도 다르며, 총칼을 들고 직접 침략자들과 전투를 벌였던 독립군들의 무장투쟁도 아니었고, 새 이념을 토대로 새 세상을 건설하고자 투신한 혁명가의 공작 활동과도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동주의 시에는 인간의 존엄을 부둥켜안는 저항의 인간애가 녹아있다. 그의 독백에는 굴종의 시대에 한 줌의 인간 존엄이라도 수호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맺혀있다. 야만의 시대에 인간성의 고귀함을 고고하게 지향하고자 했다.


윤동주는 순수이다.

하늘처럼 광대하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별처럼 영롱하며, 시처럼 그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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