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면
잎이 뾰족한 나무도 넓고 두터운 나무도
키 큰 나무도 작은 나무도
꽃을 피우는 나무도 그렇지 않은 나무도
색이 바랜 나무도 푸른 나무도
몸통이 거친 나무도 매끄러운 나무도
가지가 넓은 나무도 가지가 그리 많지 않은 나무도
새가 둥지를 튼 나무도 아무 둥지가 없는 나무도
그저 이름 모르거나 혹은 어쩌다 이름을 알 수 있는
‘나무’ 일뿐인데
나무가 산을 내려오면
종이로 쓰일 나무로
고무를 만드는 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나무로
식용으로 장신구로 관상용으로
추위와 더위를 피하는 용으로
약재로 반찬으로
가지가지도 쓰여
쓰임 받지 못하는 나무는
버려지거나 잘리지도 않고
타인과 함께하는 세상 속의 나는
손이 크거나 작고
키가 작거나 크고
아이를 낳거나 낳지 못했으며
나이가 들었거나 어리고
몸이 아름답거나 못났고
친구가 많거나 적으며
집이 있거나 없으며
명예를 얻거나 얻지 못한
어느 한 인간이지만
산에 오르면
산보다 작은 어느 ‘인간’이 되어
버려지거나 잘리지 않은 어느 나무에게 감사하는
그저 나인 존재가 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