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높이가 곧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람

행복의 정의

by Lydia Youn

“벌꿀 오소리는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산대.”
“그거 너 아니야? 난 바닷가재야. 벌꿀 오소리는 약간 미쳤을 때 나 같아.”
“호오? 미친 거 같지. 나인 것 같아. 한심해.”
“일이나 뭔가에 미치면 저렇게 되는 것 같아, 사람도. 결국 뭐든 남에겐 일정 부분 뺏긴다고.”
“내가 일이 먼저라도 예뻐해 줄래?”
“애인이 아니면 가능. 그래서 우린 친구야.”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올라가 보이면 가치평가 다시 해줘?”
“난 사람을 높낮이로 평가 안 해. 깊이로 평가하지.”
“그게 그거야. 말장난하지 마라. 내 깊이 가늠 못하잖아”

난 그렇게 생각해. 높낮이는 진짜 말 그대로 현재의 위치일 뿐이지 그게 깊이를 나타내는 건 아니야. 낮고 깊은 곳에 있을 수도 있고 높고 얕은 곳에 있을 수도 있어. 난 낮고 깊은 곳 혹은 높고 깊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했던 것 같아.

네가 나에게 장난스레 내가 네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고 했잖아. 그래. 난 아직 네 깊이는 모르겠어. 높낮이는 정말 보고 싶지 않아도 너무 쉽게 보이는데 깊이는 좀처럼 쉽게 보이지가 않거든. 어떻게 보냐 하면 얼마나 낮은 곳과 높은 곳을 많이 왔다 갔다 했느냐가 결국 깊이 인 것 같아. 차곡차곡 올라가기도 하고 어쩌다가는 와르르 무너지면서도 올라 간만큼 그리고 또 내려간 만큼 깊이는 결국 깊어진 거야.

슬프게도 높낮이는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점이 달라. 어느 인간은 나보다 저 먼 밑인 것 같아서 감히 쳐다보기도 두려운 아래에서, 어느 인간은 고개가 아플 정도로 올려다보다가 고개가 꺾일 것만 같아서 올려다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위에서 시작해. 처음부터 높은 곳에 있어서 계속 높은 곳을 유지하는 사람과 처음부터 낮은 곳에 있어서 계속 낮은 곳에서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사실 대부분이야. 무섭지만 대부분이라고.

나도 내가 태어난 그 지점의 높이 이상으로 뛰어오르려면 우물에 갇힌 작은 개구리가 되어서 언제쯤 뛰어넘어가나 하고 그렇게도 우물 밖을 뛰어나가려고 노력해야 해. 세상은 사실 그렇게 해서 그 우물을 뛰어넘은 사람이나 원래부터 그 우물 밖에 있는 사람들을 ‘동경’해. 물론 우물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던 어떤 개구리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어. 결과적으로 보기엔 ‘우물 빠져나오기 실패!’지만 그 과정 가운데 어떤 사람들보다 깊이가 깊어진 사람들 있잖아. 뛰어오르고 또다시 떨어졌던 그 수많은 반복 가운데 깊이가 깊어진 ‘우리들’ 말이야.

물론 어느 곳이든 살아왔던 환경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에 부칠 때가 더 많아. 슬프게도 오르락내리락하던 열정의 시기보단 유지의 시기가 더 괴롭기도 해.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우리 모두의 우물의 크기가 다르다는 거야. 어떤 개구리는 수심 1km의 우물을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자책해서 우물에 빠져 죽기도 하고, 어떤 개구리는 수심 100m의 우물을 빠져나오기 위해 오늘도 발버둥 치고, 어떤 개구리는 수심 10cm의 우물을 빠져나왔다고 기뻐해.

남들이 몇 km, 몇 m, 몇 cm의 우물을 빠져나왔다고 자랑하든, 사실 그건 내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아. 그건 ‘그들의 삶’인 거지. 그리고 ‘그들의 높이’이고 ‘그들의 깊이’인 거지. 난 내가 넘을 수 있는 우물은 어느 정도 일까 가늠하고 뛰고 또 뛰어서 그 우물을 넘어가고, 가끔은 우물 안에서 몸을 그저 담그거나 우물물을 마시면서 쉬기도 하고, 재미로 정말 얕은 우물들을 만들어서 뛰어넘으면서 깊이를 또 쌓아가기도 하면서 살면 되는 거야.

정말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넘는 1km 깊이의 우물을 넘어야만 우리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1km 깊이의 우물을 넘어 우리가 생각하는 하늘 꼭대기에 도달한 것만 같은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 나는 잘 모르겠어.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높낮이 기준이 아니야. 그래서 나는 ‘높은 곳에 있는 사람’ 말고 ‘어느 곳에 있든 깊이가 있는 사람’이고 싶어.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사람’의 기준은 ‘어느 곳에 있든 쌓아왔던 그 깊이로 내 높이가 곧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야. 그저 높은 곳에 있는 사람 말고.

난 그렇게 생각해. 높낮이는 진짜 말 그대로 현재의 위치일 뿐이지 그게 깊이를 나타내는 건 아니야. 낮고 깊은 곳에 있을 수도 있고 높고 얕은 곳에 있을 수도 있어. 난 낮고 깊은 곳 혹은 높고 깊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했던 것 같아. 그리고 그게 나였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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