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쓰는 사람

by Lydia Youn

‘당신, 당신을 만난 후로는 내 시간은 당신을 비추며 돈답니다.
당신과 발맞춰 걷는 시간들이 내게는 얼마나 값진지요.
가끔은 고장 난 괘종시계처럼 그대가 비춰주는 시간에 잠겨있고
가끔은 똑같이 흘러가지만 왠지 빠르게 흐르는 초시계처럼 그대가 비춰주는 시간에 담겨 빨리도 흐르고
가끔은 그저 당신의 발 위에 내 발을 얹고 속도를 높이고 늦추고 멈추고 다시 달리곤 하지요.’

‘당신, 당신을 무어라고 표현해야 좋을까요.
봄의 끝에 푸르게 살아남은 아스팔트 사이의 들꽃은 좀 그렇지요.
여름의 환락에 빨간 춤추고 있는 한여름 밤의 모기는 좀 그렇지요.
가을의 찬바람에 낙엽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잎은 좀 그렇지요.
겨울의 찬 공기에 하얗게 질려버린 손을 가진 건조증 여인은 좀 그렇지요.’

‘당신은 내 인생에서 없어졌으면 해.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치는 내 감정도
당신이 죽었으면 살았으면 몇 번을 되뇌는 것도
당신이 없어지면 내 삶이 무너져 흘러내려 증발하고 내 존재마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당신을 알기 전 나의 삶이 기억나지 않는 이 건망증도
전의 삶뿐만 아니라 나의 현재와 미래마저 앗아가는 것만 같은 불길한 기운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당신을 사랑해.’

‘사랑해요.
언제나 함께이고 싶은 마음이 당신에게 닿았으면 해요.
함께하는 모든 순간순간을 내가 더 진짜 내가 되도록,
당신이 더 진짜 당신이 되도록
그렇게 노력하며 사랑할게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1번은 공상과학 로맨스물을 좋아하는 의뢰인의 여자 친구를 위해,
2번은 아직도 격렬한 사실주의 시를 읽으며 기뻐하는 의뢰인의 아내를 위해,
3번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 같다’는 의뢰인의 애인을 위해,
4번은 고전 프로포즈를 하고 싶다는 의뢰인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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