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도 쓸 수 있었던 날

by Lydia Youn

처음으로 억지로 글을 썼다

아무 글도 쓸 수 없었던 날

아무 글도 쓸 수 없었다

코 푼 휴지 조각 같은 글만 남아 내 뇌를 후볐다


처음으로 억지로 살아본 적이 있다

눈을 떠야만 해서 눈을 떴던 날

아무 삶도 살 수 없었다

빈 달력 같은 날들만 남아 내 가슴을 조여왔다


처음으로 억지로 사랑해본 적이 있다

사랑해야만 해서 사랑했던 날

아무것도 사랑스럽지 않았다

성난 아이 같은 말들만 남아 당신의 마음을 할퀴었다


처음으로 억지로 먹어본 적이 있다

먹어야만 살 것 같아서 먹었던 날

아무것도 맛있지 않았다

덤 같은 살들만 남아 내 몸을 망쳤다


처음으로 억지로 걸어본 적이 있다

발이 아파 뒤꿈치에서 피가 나는데도 걸어야만 했던 날

아무 곳도 멋있지 않았다

뒤꿈치의 물집만 남아 내 발이 망가졌다


코 푼 휴지 조각을 모아 본다

빈 달력을 모아 본다

성난 아이 같은 마음을 모아 본다

필요 없는 덤을 모아 본다

물집을 모아 본다

글이 된다

이런 글도 쓸 수 있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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