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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dia Youn Jun 07. 2020

가보지 못한 길을 나만의 페이스로 걷기

 오늘 아침은 뒤숭숭한 마음을 뒤로한 채 산에 올랐습니다. 뒤숭숭한 마음은 산 아래 도시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들 때문입니다. 일단 저는 뒤숭숭한 마음이 들 때마다 산에 오르곤 합니다. 집 가까운 곳에 등산할 만한 산이 있다는 것은 제게 큰 행운입니다.

 저는 이 동네에 이사온지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동안 이 산에 오른 횟수는 적어도 몇십 회는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처럼 뒤숭숭한 날에 오르기도 했고, 다이어트를 위해 오르기도, 가족과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정작 산을 오르기만 한 적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산을 조금 오른 후에 평지에 가까운 둘레길을 걷거나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쉰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저는 산을 정복하기 위해 오른 것이 아니라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올랐습니다. 온갖 것들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저를 기다려주었기 때문이었죠.

 제가 다니는 산은 참 여러 갈래의 길이 많아 좋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제가 평소에 가던 길보다 조금 더 높은 곳까지 올라봤습니다. 사실 저의 눈에는 까마득하게 높은 곳처럼 보여서 좀처럼 오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길입니다. 길을 오르니 정말 몇 걸음 가지도 않아 다시 주욱 평지가 나왔습니다. 평지도 나오고 심지어는 내리막길도 나오더군요. 그 길을 따라 쭉 가보니 제가 평소에 다니던 길이 조금 아래에서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생전 처음 와보는 이 길을 걷습니다. 평소에 걷던 길을 관망하며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 걷습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금세 길의 끝에 다다랐습니다.

 저는 ‘이것 밖에 안 되는 길을 왜 이제야 왔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걸었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일단 이 산과 먼저 친해져야 했습니다. 저는 산보다는 바다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산’하면 올라야만 하는 가파른 계단들이 먼저 떠올라 오르기 전부터 몸서리가 쳐진 것입니다. 하지만 산과 천천히 조금씩 친해지다 보니 산을 좋아하지 않았던 저에게 산은 이제 휴식 같은 공간입니다. 심지어는 작년쯤 가족과의 강원도 여행에서 설악산 등반을 넣자고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람이 저이기도 합니다.

 가보지 못했던 길을 걸어와 와보지 못했던 곳에 도달한 오늘이 행복합니다. 인생은 참 긴 것 같은데 세상은 너무 빠릅니다. 가끔은 빨리 달리지 않으면 낙오자라도 되는 듯이 세상이 우리를 몰아붙입니다. 나만의 페이스를 찾기보다 주위의 시선에 나를 맞춰가는 것이 더 쉬운 요즘입니다. 끓는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며 99도까지 올라와놓고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더 이상 듣기가 힘듭니다. 99도에서 100도가 되기 위해 1도를 올리는 시간이 1도에서 99도까지 끓여왔던 시간보다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숫자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행복한 것이 좋습니다. 내가 정말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고 그게 곧 세상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가보지 못한 길에 도전할 때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페이스를 찾는 것입니다. 99도의 삶을 응원합니다. 끓고 있는 나를 응원합니다. 끓고 있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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