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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dia Youn Jul 27. 2020

당신은 참 멋진 여자야

멋진 A, 그리고 멋진 당신에게

 정말 좋은 커피를 마셔본 후 느껴지는 다른 커피의 보리차스러움, 정말 맛있는 와인을 마셔본 후 더 이상 마실 수 없는 웰메이드가 아닌 와인, 정말 좋은 질의 옷을 입어본 후 거슬리는 다른 옷들의 촉감. A는 그런 게 아쉽기도 하다. 사실 어떤 커피나 어떤 와인이어도 비슷하게 맛있고, 어떤 옷이라도 편하게 입는 것에 더 가까웠던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좋았던 때.


 그녀가 지구에 온 지도 31년 차다. A는 점점 여느 사람들과 비슷해져 갔지만 역시나 사람들은 그녀가 수상쩍음을 눈치챈다. 누구나 다 맛있다고 하는 커피를 맛이 없다고 외치는 그녀를 탐탁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왜 맛이 없다고 하면 안 되는 거죠?"


 A의 이와 같은 질문에 대답을 해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A는 지구에서의 나이 30살이 되던 해에 다시는 'No'를 크게 외치는 사람이 되지 않기로 결심한다. 정치나 하라는 소리는 더 이상 듣기가 싫기 때문이다. 정치에는 관심이 그렇게 많지도 않다.


"이 커피 정말 맛있어요!"


 A는 이렇게 사회생활을 배웠다. 손가락만 까딱까딱 누르면 좋아요를 남발할 수 있는 사회에서 입으로 좋다고 말해주는 것쯤이야 손가락으로 누르기보다 조금은 더 어렵지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실 커피는 그다지 맛있지 않았다. A는 대신 이런 질문을 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 커피가 왜 맛있죠?"


 남들이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 왜냐고 물을 수 있는 당돌한 지구인에게 마음을 뺏기고 마는 것이다. 바리스타가 한 질문이 아니라면 더 좋다.


"저는 커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왠지 더 맛이 있는 것 같아요."


 A가 미소를 띠며 말한다. 가짜 미소가 아닌 진짜 미소다. 가짜 물음이 아니라 진짜 물음에서 나온 질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A는 집으로 돌아가서 커피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다. 사실 뭔지 모르고 마실 때가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역시 알고 마셔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A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보리차 같은 연한 커피나 산미가 너무 강해 몸서리치게 하는 싸구려 커피도 함께 맛있게 마셔줄 수 있는 사람이다. A는 완벽히 인간화가 된 것일까?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겠다. 그 커피가 왜 맛이 있냐고 물은 남자가 A에게 던진 질문의 의도를 그녀가 눈치채기 못했기 때문이다.






 A는 참 멋진 여자라고 생각해. 아무도 하지 않는 말을 나서서 할 수 있는 여자는 드물거든. 참 멋진 여자야. 그녀는 가끔 자기가 외계인이라고 하더라고. 난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것에 잠자코 웃을 수만은 없었어. 그녀의 그 말이 얼마나 자조적인 말인지를 내가 잘 알거든. 나도 언젠가 사람들에게 내가 외계인이라고 말하고 다닌 적이 있었어. 가끔은 나도 지구인 같지 않을 때가 있거든. 지구인 같지 않다는 말이 우습게 들릴 수도 있어. 하지만 난 정말이지 우습지가 않은걸. 내가 나 스스로를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던 때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였어.


"나는 외계인이야."


 A가 처음 그 말을 했을 때가 5년 전쯤이던가? 아마도 그랬을 거야. 5년 전이었어. 난 그때 그 말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은 거지. 사실 어릴 때는 내가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을 못 자곤 했거든. 고등학교 때쯤 그 생각을 멈춘 것 같아. 삶이 바빠진 거지. 그런데 20대 중반이나 된 A가 내 눈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니까 난 진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어. 힘든 건가 싶기도 했고. 나는 사람들이 A에 대해서 뭐라고 지껄이는 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A는 멋진 여자거든. A는 멋진 여자야. 나는 용기가 없어서 A에게 '멋지다'라는 말을 못 해주겠어.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관심을 표현해보기로 했어.



"이 커피 정말 맛있어요!"


"이 커피가 왜 맛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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