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까지
있잖아. 난 이번 생에서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어. 욕심을 더 내지 않는다면 이미 해보고 싶은 건 거의 다 해봤어.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이 가봤고, 많은 사람들과 친해져보기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이 먹었고, 이루고 싶은 것들도 이뤘어. 물론 욕심을 부려서 뭔가를 더 가지고 이루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무한대로 욕심을 부릴 수도 있어. 그냥 이제는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지. 노력할 만큼 했고 내 딴에는 그래도 열심히 살아와서 별로 더 원하는 것도 없어. 지금은 그냥 행복하고 평온하고 조금은 무료한 삶을 살고 있나 봐.
그런 나에게 단 하나의 열정이 너인걸.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어. 사실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보다 더 많아. 근데 사람의 마음과 사랑은 논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너를 떠나야만 하는 수십 가지의 이유들을 품에 안고도 나는 너를 떠나지 못하겠어. 네가 그냥 좋다는 그 한 가지 이유로 떠날 수가 없겠다고. 네가 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걸까? 가끔씩 마주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 못한 나는 아직 이 세상에 욕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무미한 세상에 뭔가 다른 고통 좀 느껴보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널 보낸 걸까? 난 오늘도 너를 사랑하면서 엄청 고통스러워. 떠나야만 하는 널 도무지 놓을 수가 없어서 괴로워. 너에겐 아무에게도 가져보지 못했던 온갖 감정이 들어서 힘들어.
난 매일 너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그리고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생각해. 이런 사랑을 해봤다는 게 축복받은 걸까? 왜들 진정한 사랑 한 번도 못해보는 삶도 있다고 하잖아. 그런 비극보단 나은 걸까? 너는 참 알 수 없는 사람이야. 나는 백 년 남짓한 이번 생에에서 너를 평생 잊을 수 없겠지. 행복하고도 괴로워했던 우리를 평생 곱씹으며 살아가겠지. 나라는 사람의 기억에 영원히 박혀있을 네가 참 무섭다.
난 앞으로의 우리의 관계가 까마득하게만 느껴져. 지금 이상으로 더 좋아질 것도 없다고 생각하거든. 내가 너무 비관적이라고 하기엔 그냥 우리는 그래 왔잖아. 내 열정이 너라고 말했는데 이거 너무 딴소리하는 거 같니? 난 이번 생에서 너와 온전히 함께 나눌 수 있는 행복 말고는 바라는 게 없는걸.
방금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왔어. 너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