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한번 보자고 하지 말아 주세요

나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다른 생각

by Lydia Youn

언젠가부터 ‘언제 한번 보자’고 하는 말이 싫더라. 그건 ‘예의상’하는 말이기도 한데 사실 그렇게까지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내가 별로 그렇게까지 볼 마음이 없는 사람에겐 ‘그래요’,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라고 하고 정말 봐야만 하는 사람에겐 정확한 날짜를 바로 잡는다. 언제 한 번 말고 진짜 볼 수 있는 날짜를.


언제 한 번, 대체 언제 볼 것인가? 겉치레라도 그런 말을 해야 하는 형식적인 관계들이 매우 지쳐간다. ‘커피 한잔 해요’, ‘밥 한 번 먹어요’ 도대체 언제요? 그래서 난 그 대신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보고 싶으니까. 근데 그 말을 이성에게 하면 오해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이성에게는 날짜를 바로 잡는 말로 바꾼다.


보고 싶은 것이 잘못은 아니다. 성별을 떠나서 정말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내 삶을 더 행복한 쪽으로 이끌어가게 하는 사람들. 그래서 나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내 성격이기도 하다. 이런 성격 때문에 곤란해진 경우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나와 함께했던 시간의 즐거웠던 일들을 더 먼저 떠올리더라. 참 밝은 사람이라고.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겉치레라도 밥 한번 먹자고 할 수 있는데, 정말 중요한 사람에게는 그런 겉치레의 말보다는 진심 어린 한마디가 더 중요하다. 응원하고 있다든지, 보고 싶다든지, 언제 어디서 만나자든지.


가끔 이런 경우도 있다. 영어로 하면 쉬운데 한국어로 말하기는 어려운 말들. ‘I love you’, ‘I miss you’, ‘I want you’ 같은 말들. 노래 가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해, 그리워, 너를 원해 이런 말은 왠지 낯간지러운 말로 느껴진다. 왜 이렇게 사랑을 말하기 어려워진 걸까?


사랑한다는 말이 연인의 사랑 위주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연인에게 조차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우리 가족도 사랑하고 내 친구도 사랑하고 내 강아지도 사랑하고 내 글을 읽어주는 당신도 사랑한다. 사랑은 죄가 아니다. 더 많이 말해도 된다. 더 많은 약속을 잡아도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히 종식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보자. 그러다가 관계에 지치면 혼자 만의 시간에 빠져도 전혀 상관없다. 그렇게 알아가는 것이 인간관계가 아닐까. 혼자여도 봐야 하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봐야 한다. 밖에 나가지 않는 성격의 사람들은 더 많이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고, 밖에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성격의 사람들은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질 때 다른 나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밖에도 열심히 돌아다니고 집에서도 늘어져서 쉬기도 한다. 모든 면의 나를 찾고 싶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어떻게라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내가 내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해본 후에 나를 좀 더 사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곧 남을 대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본인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남도 사랑으로 대할 줄 안다. 하지만 본인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에게도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기가 쉽고, 남으로부터 상처를 쉽게 받는 사람이 되기도 쉽다.


언제 한번 보자고 하지 말아 주세요. 저를 더 찾아가고 뵙겠습니다. 혹은 약속을 잡읍시다. 언제 만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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