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동생은 내 눈앞에서 나의 얘기에 아주 질려하고 있습니다.
너는 왜 울지 않아라는 질문에 내 동생은 ''나 진짜 많이 우는데.''라는 말을 했다.
아.. 나도 그랬어. 나는 정말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요즘은 거의 매일 울고 있다. 심지어 어렸을 때부터 유니세프 광고 같은 것이 나오면 1초 만에 울기도 하고, 글을 쓰면서 울기도 하고, 글을 읽으면서 울기도 하고, 가족이랑 얘기를 하면서 울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왜 그렇게 나처럼 울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했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혼자 만의 시간에 흘려야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눈물 참음'이 있어야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눈물을 참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던 일화를 얘기해 주겠다. 정말 죽도록 울기 싫었던 적이 지금 생각해보면 딱 두 번이 있었다. 두 번 다 일을 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한 번은 회사 상사의 사무실 안에서였다. 상사는 신입사원이 되어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돈을 벌기는 하지만 매너리즘에 빠진 무료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너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말을 돌려했다. 상사도 나를 배려한답시고 그 얘기를 정말 긴 시간에 걸쳐 나에게 조언해주었는데 나는 그때 정말 분노에 가득 차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내 눈에서는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상사의 말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그때 한창 일과 삶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단정하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이기도 했었다. 근데 웃긴 건 회사에서는 여자가 편하게 입고 단정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단정하게 하라고 하고, 조금만 붙는 옷을 입어도 왜 이렇게 '야하게' 입었냐는 말을 하기도 한다. 도대체 어느 정도여야 단정한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난 그놈의 상사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내 덕분에 돈을 벌기도 했으면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니 난 정말 화가 났었다. 나와 맞지 않는 상사이기 때문에 지금은 그 회사를 나왔지만 아무튼 간 그렇다.
다른 한 번은 내가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심지어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마저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는 않더라. 내가 물론 잘못한 적도 있다. 뒤돌아보면 그 시기에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 역시 정말 힘들었다. 하루는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혼자 울었다. 정말 너무 눈물이 나서 참을 수가 없겠어서 혼자 들어가서 엉엉 울었다. 그날 내가 울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동료에게 그 이후에도 그 날 내가 울었다고도 말했지만 사람들은 남의 눈물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나중에 들어보니 동료 역시 그 당시의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하더라. 그 사람도 나처럼 마음으로든 몰래든 울고 있었겠지.
내가 '남' 앞에서 눈물을 한번 거하게 흘린 적도 있다. 그 당시에 그렇게까지 친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마음속으로는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한테 말이다. 그 사람은 갑자기 내가 그 사람을 불러서 울자 '너는 우는 게 더 예쁘다'라고 해줬다. 나는 그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도 항상 그에게 화를 냈었던 것 같다. 왠지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부끄러워서 일 수도 있다. 혹은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간 그를 좋아하긴 했다. 나는 정말로 그 앞에서는 울기가 싫었는데 그라면 왠지 내가 우는 걸 보고 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는 정말 날 열심히 위로해줬다. 정말 좋은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너는 그렇게 살지 좀 말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참 나쁜 사람이었다. 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적도 있다. 내가 참 어리석었다. 내 못된 전상사에게 듣던 말을 그 같이 좋은 사람에게 그렇게 나쁘게 말했었다니. 그 사람과는 친구로 남을 수 없었다. 우리의 관계에서는 나와 그 사람이 서로 잘못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난 누군가가 좀 내 앞에서 울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웃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감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어서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운다. 사람들은 내가 웃는 것을 보고 쟤는 대체 왜 웃는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크게 웃는다. 그렇게 '항상 신나 보이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혼자 집에서 우는 시간이 더 많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모르더라. 가끔은 '조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왜 그렇게 웃냐면서. 사실 웃는 게 잘못은 아닌데 무던하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은 내가 크게 웃기만 해도 날 이상한 사람 아니냐는 듯 쳐다본다. 사실 그렇게 크게 웃기까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들은 알까?
나는 정말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죽었다가 살아나면서 나의 모든 성격이 바뀌었다.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 정신적인 죽음이었다.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교통사고를 당할 뻔하거나 아무튼 간 죽었다 살아난 사람에게서 전에는 없던 괴상한 능력이 생긴다는 말. 갑자기 모르던 언어를 능숙하게 한다거나 하는 기이한 일. 그런 일이 사실 나에게도 벌어지고 있다. 나는 20대 초반에 정말 죽음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 당시의 나를 알던 사람은 거의 없는데 정말 죽고 싶었을 때는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를 살려준 건 내가 정말 친하다고 생각하는 몇 사람이다. 정말 오랜 친구나 가족 같은. 사실 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별로 만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정말 오랜 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싶지도 않아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살았던 적이 있다. 정말로 죽고 싶었는데 피가 무서워서 죽지 못했다면 사람들은 믿을까?
믿든 믿지 않든 좋다. 아무튼 나는 피가 무서워서 정말 죽고 싶었지만 피를 내기가 싫었다. 아픈 것도 싫었다.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게 죽을 수 있을까를 검색해 본 적도 있다. 죽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는 그 정도가 좀 더 심했던 사람이다. 내가 죽음에서 살아난 이유는 너무 하고 싶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무서워질 정도로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아 져서 은둔형 외톨이 수준이 되어가는 와중에도 내 깊은 마음에는 ''지금이 내 최악의 모습일 거야. 나는 원래 더 나은 사람이고 무조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말 거야.''라는 욕심이 있었다. 사실 그런 욕심이 나를 죽고 싶게 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 욕심 덕분에 나는 살 수도 있었다.
나는 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가 않아서 정말 무던히도 노력했다. 난 내가 그 당시에 우울증이라는 병에 걸렸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과에 상담을 받으러 간 적도 있다.(약을 먹기는 싫어서 약을 먹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료로 상담을 해준다는 동사무소 심리치료 상담에 신청을 해서 10회를 간 적도 있었고, 밖에 나가기가 지옥같이 싫어도 덜덜 떨면서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다. 그때 본 영화는 정말 싫었는데 사실 지금 다시 보면 정말 좋은 영화일 것 같다. 상황이 그 영화를 지옥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겠지. 아무튼 정말 힘들었다.
그 전에는 나는 굉장히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죽고 싶어 했던 '죽음에 가까운 시간'을 지나고 나서는 사람이 진짜 달라졌다. 정말 외향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으로.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정말 밝고 외향적인 '인싸'라고 생각하지만 난 사실 '인싸'이기보다는 '아싸'일 때 더 편한 사람이다. 당연히 남들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재밌고 좋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좋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남들을 이끌면서 매일에 가깝게 약속을 잡기도 하지만 그런 평범한 '약속'들에도 질려버려서 가끔은 여행을 훌쩍 떠나기도 한다. 주변의 사람들은 갑자기 여행을 떠난다는 날 보고 '갑자기?'라는 말을 한다.
''갑자기?''
''아니요. 갑자기가 아니에요!''
정말 갑자기가 아니다. 정말로 오랜 시간을 혼자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때가 되었다 싶으면 여행을 떠나곤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갑자기 어딜 가냐고 한다. 작년에는 혼자 모아둔 돈을 가지고 유럽 여행을 24일 정도 떠난 적이 있었는데 떠나기 바로 전날 티켓을 사고 바로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에 떠났다. 회사는 프리랜서로 전환을 하든 아니면 그냥 제가 필요 없으시다면 일을 관둬도 좋으니 난 떠나겠다고 말했다.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떠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면 그만두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회사에서 돈을 버는 시간이 아까웠다. 돈보다는 내 행복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항상 꿈꿔왔던 프랑스에 도착할 수 있었고, 눈물겹도록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왔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내가 당당하게 떠나니 아무도 붙잡지 않더라. 가라고 말해주더라. 회사 일도 아직까지 하고 있다. 나의 능력을 인정해준 사람들이 나에게 프리랜서로도 일을 주고 있다. 프랑스에 가서도 가끔 일을 하고 싶을 때는 일을 했다. 내가 열심히 해 왔던 2년이 있었기에 나는 내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었고, 그 능력과 내 성격을 알아본 사람들이 내가 회사를 그만두어도 일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회사를 다닐 때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그 일에 임할 수는 없었다. 2년을 다녔던 회사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그나마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었다.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기도 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돈이 되지 않아서 일을 처음 시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그만두는 일인 '헤드헌터'라는 직업이다. 나는 기본급 50만 원을 받고 일을 시작했는데 좋은 상사 밑에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일에 대한 비전을 보고 당장 받는 돈 50만 원 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미래를 보며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고, 2년의 기간 동안 2번은 한 달에 천만 원 이상의 돈이 통장에 찍힌 적도 있다. 25살에 일을 처음으로 시작했는데, 사실 나는 고졸이다. 가장 죽고 싶었던 적은 대학교를 다녔을 때였고 졸업을 하는 것이 죽음보다 싫어서 죽음 대신 졸업을 하지 않기를 택했다. 아무튼 그렇게 멀쩡한 학교 졸업장을 버리고 택한 일에서 어찌 보면 남들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다니, 운이 좋기도 하지만 어디선가 들었다. 운도 능력이라고.
운을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렇게 눈물이 많은 여자지만 사람들 앞에서 '조커'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웃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기 때문에 그런 운들이 나에게 찾아올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에게는 난 참 밝고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사람으로 비친다.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더니 '공주'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몇 번 있다. 하지만 나도 집에 돌아와서는 내 뱃살을 보며 쥐어뜯고 싶기도 하고, 살이 찔까 술을 마시면서도 괴롭기도 하고, 내가 남들에게 뒤떨어지는 건 아닐까 주변을 둘러보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예전의 나보다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확신이다. 나는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
동생이 말한다. ''저기요, 제발 눈을 감고 좀 쉬세요!''
나는 말했다. 이 글만 발행하고 쉬겠노라. 그래서 내 브런치에는 정말 많은 글들이 있는 게 아닐까. 아직 내 구독자의 다수는 내 지인이지만 나는 내 지인이 아닌 '멋진' 사람들이 나를 구독해줄 때마다 정말 놀라고 있다. ''내 글을 저런 사람이 봐준다고?'' 하면서. 어리다고 보면 어리다고도 할 수 있는 나이에 참 쉼 없이도 달려왔다. 이 글을 발행하면 이제는 좀 쉬어야겠다. 오늘은 하루 종일 글만 쓰다가 시간이 다 갔다. 하지만 너무 행복하다. 죽지 않고 글을 쓰고 웃고 울고 행복하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리고 브런치에 글이 하나하나 발행될 때마다 그게 너무 뿌듯해서 난 하루에도 몇 개씩 브런치에 글을 올리곤 한다. 속도를 늦춰야 할 필요도 있다. 나를 아주 잘 아는 누군가가 말하더라. 너는 너무 빠른 사람이라서 세상이 널 받아줄 수가 없다고, 그러니 너의 때가 오길 기다리라고. 나는 아직도 나의 때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잘될 일들이 많다는 생각이 나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오늘이 참 감사하다.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