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에서 나윤권에 이르다. 음악은 이어지고 이어진다.
유영석, 조병석, 김형석은 하늘에 찬란히 떠 있는 별은 아니다. 그리고 김광석은 하늘의 찬란한 별이 되었다. 20세기 초반에 태어나신 정관계 유명인사들 중에는 호가 "바위 암"자를 쓰시는 분이 많다. 호암 이병철(삼성), 연암 구인회(엘지), 청암 박태준(포스코) 이렇게 세 분 다 바위 암자를 호로 쓰신다. 시대를 오르는 산길 위에 굳건히 서 있는 바위와 같이 우러르게 만들고, 경외감을 일으키고 싶은 것일까? 물론 유영석, 조병석, 김광석, 김형석, 4명 모두 "돌 석"자를 쓰진 않지만, 음악의 산길에 오르는 길에 돌바위에 앉아서 쉬게 만들고, 때론 돌을 계곡에 던지기도 한다. 우뚝선 바위가 아니라 산행 중에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돌이 더 정겹다. 4대 석학의 마지막 김형석 #3을 이제 시작해보자.
Chapter 6. 김형석 #3 : 그리움 만지다
김형석은 스스로 "유재하 선배가 대중음악의 길 가게 했다"라고 말을 했다. 유재하 1집에 보면 Minuet란 연주곡이 있다. 한양대 작곡과에 입학하였지만 대중음악의 길로 들어섰지만, 현악기로 구성된 짧은 소곡인 Minuet를 작곡하였다.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로 이루어진 현악기의 향연을 듣고 있노라면 1987년에 나왔던 앨범이라고 믿기 어렵다. 무려 30년 전에 한국 대중음악에 이 앨범이 나왔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대학생 김형석(1966년생)은 4년 선배 유재하(1962년생)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수 많은 악기를 다루고, 모든 곡을 작사, 작곡, 편곡하고 모든 악기를 본인이 연주하였으니 넘사벽이었을 것이다.
김형석은 넘사벽 유재하를 배우기 시작했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김형석은 자신의 앨범에 한 곡 정도는 꼭 연주곡을 넣었다. 유재하에 대한 오마주였을까? 아님 본인도 대중음악인 이전에 작곡과 출신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했었던 것일까? 위대한 사람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면면을 살펴보면, 이 세상에 툭 튀어나온 사람은 드물다. 그 누구나 선대의 누군가로부터 배우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진다. 한니발에서 스키피오, 이황에서 이이,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로 이어지고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이어진다. 물론 그 연결점이 스승이나 선대의 업적을 이어가는 작업이 아니라, 스승의 업적을 뒤집는 작업일 수도 있다.
김형석은 유재하로부터 음악을 이어받았다. 김형석은 노랫가사를 담을 음악의 그릇을 찾는 과정을 유재하로부터 배웠다. 노랫가사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회화적으로 그려냈다. 그렇다고 말만 번드러지게, 유려하게 담아내는 가사가 아니다. 쇼미더머니에 나오는 랩배틀이 아니라 깊은 밤 새벽에 깨어 떠나간 그 사람을 생각하다가 배개에 눈물 젖으며 부르는 그런 노래가사였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가사를 살펴보자. "내 곁을 떠나가는 날 가슴에 품었던 분홍빛 수많은 추억들이 푸르게 바래졌소" 라고 노래한다. 김형석도 떠나간 사람을 원망하거나, 남겨진 사람의 슬픔을 꺼이꺼이 울지 않았다. 나윤권의 그리움 만진다를 보면 "닿을 수도 없지만 널 볼 수 도 없지만 난 보고 또 본다 널 부른다 바람따라 간다 봄 맞으며 널 만진다 그리움 만지다"라고 노래한다.
김형석은 유재하로부터 나윤권으로 이어지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 나 홀로 점인 사람은 없다. 아무리 유명하고 힘있는 사람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 점은 선으로 이어진다. 내 아버지에서 나로 이어지고, 내 아들, 딸로 이어진다. 스스로 점이라고 믿었던 사람도 누군가가 점이 되어 선으로 이어진다. 유재하는 점이 되어, 김형석, 유희열, 조규찬, 스윗소로우로 이어진다. 김형석에서 박진영, 나윤권으로 또 이어졌다. 사실 "나"라는 실체의 총아는 누군가의 점들로 그려진 점묘그림일지도 모른다.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의 그림처럼 멀리서 보면 멋진 그림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각각 빨간 색, 노란색 점일지도 모른다. 모니터에 단 하나의 dot처럼 우리네 인생도 수 많은 "다른 사람들의 점"이 모여있다.
음악은 이어진다. 삶도 이어진다. 김형석은 자신이 이어지는 점이라는 사실에 화답한다. 그리고 억울하게 사라져버린 수많은 팽목항의 점들을 잊지 않았다. "그리움 만진다" 의 앨범 자킷을 보면 흑백 사진 속 김형석은 피아노 앞에서 연주하고 있고, 오른 손 팔목에 노란색 밴드를 차고 있다. "익숙했던 안부 마저 난 어쩔 수 없을까 잘가란 말도 못했지 널 보내줘야 할까 다시 널 부른다"라고 노래했다. 잘가란 말도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 수많은 사람들을 노래했고, 남겨진 사람들은 떠난 사람의 "그리움"을 만지고 또 만지고 있다. 김형석은 음악으로 사람들을 이을려고 했다. 우린 김형석이 이어놓은 음악의 점들을 듣고 노래한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일은 점에서 선으로 이어지는 삶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이 고단해도, 누군가가 떠나가고, 나 혼자 남겨지고, 회사에서 학교에서 치열한 경쟁의 삶을 살다 뒤척이는 잠을 설쳐 새벽에 깨어나도.. 우린 이어진다.
아직까진 우리는 그리움을 만진다. 아직 두 손에 촉감이 있고, 떠나간 그 사람을 그리워 한다. 김형석은 그 사람들 뒤에서 그리움을 만지며, 노래하고 노래한다. 여전히 그의 오른 손 팔목에는 노란색 밴드가 채워져 있다. 김형석이 세상을 이어가는 방법이자 음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재하에서 나윤권에 이르게 하고, 세상을 이어주는 음악을 노래하는 김형석은 오늘도 연주하고 노래한다.
P.S 긴 추석연휴 탓에 업데이트가 늦었습니다. 마지막 "Chapter 7. 광석-형석 : 사랑이라는 이유로"가 이어집니다.
P.S 왜 그리움 만지다가 아니라 그리움 만진다 일까? 그리움 만진다는 그리움을 지금 이순간 만지고 있다는 얘기이고, 그리움 만지다는 그리움을 만지는 상황이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그리움이란 계속 만지는 일이다. 잊혀지지 않고, 잊을 수 도 없고, 마음 속에 항상 간직된 채 항상 만져지고 있다. 그리움 만지다가 아니라 그리움 만진다라는 노래 제목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내려 앉는다. 그렇구나.. 그리움을 만지다가 아니라 그리움을 만진다 였구나. 그래서 더더욱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