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광석-형석 : 사랑이라는 이유로

언젠가는 우리가 함께 나눌 시간들을 위해

by 정윤식

오늘이 대장정의 마무리 시점입니다. 내 인생에 남겨진 총 7명의 음악인을 원없이 얘기하고 들었습니다. 신해철, 이승철, 김현철, 유영석, 조병석, 김광석, 김형석에 이르기까지 “음악이라는 이유로 많은 날들을 엮어가고” 나의 젊은 날을 관통하였습니다. 3대 철황과 4대 석학으로 이름 붙여서 이끌어 왔습니다. 3명은 황제였고, 4명은 학자였습니다. 황제는 경이로웠고, 경배에 대상이며, 내 음악생활을 지배자였습니다. 학자는 내게 음악이 이러해야 함을 가르쳐주고, 생각하게 하고, 내 음악생활을 공부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 3대 철황이니 4대 석학이니 멋대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철황이 석학보다 더 뛰어난 것도 아니고, 석학이 철황보다 더 깊이 있게 공부하게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들이 있음으로 내 젊은 날은 밝게 빛났고, 우리의 젊은 날들은 찬란했습니다. 이제 7명 중에서 2명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나머지 5명은 간간히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가끔 전하는 연예뉴스에나 등장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함께 나눌 시간들을 위해”서는 볼륨을 높입니다. 음악이 있는 한 그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Chapter 7. 광석-형석 : 사랑이라는 이유로

말장난 같아 보이지만, 광석은 형석보다 더 큰 분류의 개념입니다. 광석 중에는 철광석도 있고, 금광석도 있고, 형석도 있습니다. 광석은 형석에게 그런 존재였습니다. 광석(64년생)과 형석(66년생)은 두 살차이 밖에 나지 않은 시대를 공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일상적 고민은 한 방향이었을 것이고, 그들의 음악적 욕심은 날줄과 실줄이 되어 서로 묶여 있었습니다. 김광석 2집에 “사랑이라는 이유로”라는 곡은 유재하 음악에 영향을 충분히 받은 김형석이 젊은 날의 음악이 김광석에 의해서 노래되었습니다.


김형석의 곡 스타일은 피아노 전주로 시작됩니다. 건반악기로 사람을 잔잔히 받아줍니다. 피아노는 사람의 마음을 가라 앉히는 기분을 줍니다. 건반을 지긋이 누를 때면, 내 마음에 불쑥불쑥 솟아나는 상념들을 누르는 기분입니다. 김형석의 곡 대부분은 피아노 전주로 시작하고, 중반에는 현악기로 채워집니다. 대부분의 음악적 악상을 피아노로 구상하기 때문에 피아노가 기본 베이스인 셈입니다. 하지만 김광석을 만난 김형석은 기타반주로만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채웁니다. 마치 “김광석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주특기인 피아노 반주 대신 기타 반주를 선택합니다. 기타는 한음 한음 튕거나 뜯어서 연주합니다. 기타는 내 마음에 잔잔히 가라앉은 감정들을 튕기거나 뜯어서 공중에 뿌리는 기분입니다.


피아노는 튀어나오는 상념을 가라앉히지만, 기타는 가라앉은 마음을 튕깁니다. 김형석은 김광석에게 피아노 대신에 기타연주로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선사합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하얗게 새운 많은 밤들 이젠 멀어져 기억 속으로 묻혀”..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합니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그 많은 밤들을 하얗게 지새우진 않았을텐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을텐데”.. 그 마저 이젠 멀어져 기억 속으로 묻혔습니다. 그 기억들을 기타 한음 한음에 튕겨 공중에 띄우고 있습니다. “함께 나누던 우리의 많은 얘긴 가슴에 남아 이젠 다시 추억의 미소만 내게 남겨주네” 하얗게 지샌 많은 밤 중에 얼마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을까요? 음악 얘기로 밤을 새우고,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그려나갈 미래의 계획들은 이제 가슴에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추억이로만 남았습니다.

“나의 눈물이 네 뒷모습으로 가득 고여도 나는 너를 떠날 수는 없을 것만 같아.” 참으로 시적인 표현입니다. 떠나간 사람이 엉글엉글 내 눈물에 비쳐서 가득 고여 있습니다. 떠나는 그 사람을 잡을 수 도 없고, 그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떠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입니다. 떠나는 그 사람이 내 눈물에 비쳐 “나의 눈물이 네 뒷모습으로 가득 고여도”라고 노래합니다. 그 사람은 나를 떠났지만, “나는 너를 떠날 수는 없을 것만 같아”라고 얘기합니다. 떠나는 사람에게 이별이지만, 남겨진 사람에게 이별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 그 사람을 “사랑이라는 이유로” 붙잡고 있습니다. 떠나는 사람은 뒤를 보지 않지만, 남겨진 사람은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 짓고, 이별을 받아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많은 날들을 엮어가고 언제가는 우리가 함께 나눌 시간들을 위해”라고 노래합니다. 이미 떠나버린 사람이고, 남겨진 사람이지만, 그 사랑이 이별로 마침표를 찍었지만, “우리가 하얗게 지샌 수많은 밤들과 함께 나눈 많은 얘기”들은 사랑으로 남았습니다. 사랑은 두 사람의 축복 속에서 결혼하고 100년 해후한다고 완성되는게 아니라, 비록 헤어지더라도 사랑으로 남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입니다. 이제는 헤어져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각자의 삶을 많은 날들로 엮어가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함께 만나서 나눌 시간들을 위해서 그 사랑을 가슴속에 간직합니다.


동물원의 시청앞 지하철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 가사처럼, 이젠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지만 우연히 시청앞 지하철에서 만나 각자의 삶을 짧게 얘기하는 그 시간이 남겨져 있습니다. 김광석과 신해철은 이제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음악이라는 이유로 그 사람들의 음악을 들으며 많은 날들을 엮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그 닿을 수 없는 곳에 이르러 “우리가 함께 나눌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는 그 곳에서 하얗게 수많은 밤을 새우고 얘기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이유”가 아닐까요? 그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나 100년 해후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밤들과 얘기들이 추억으로 남더라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이별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름다운 (사람과의) 이별이기 때문이고, 너의 뒤에서 눈물 지으며 당신을 떠나 보낼 수 있어도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김형석은 같은 사연의 노래를 김광석을 통해서는 “사랑이라는 이유로”로 표현하고, 박진영을 통해서는 “너의 뒤에서”로 표현했습니다. 광석-형석은 그렇게 노래합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이 세상을 살아가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함께 나눌 시간들을 위해서 우리는 기타를 튕기며 노래하기도 하고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노래합니다. 당신은 “사랑이라는 이유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볼륨을 높여 김광석의 읖조림을 들어봅시다. 그의 목소리에 담겨진 호소가 당신의 눈물에 가득 고이길 바랍니다.


P.S 그동안 3대 철황과 4대 석학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이제 7명의 음악인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은 기분입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이제 다시 다른 글로 시작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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