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폴, 의심의 문을 젖히다.
어제 회사에서 부서 직원들과 함께 중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노나라(지금의 산둥반도) 출신 공자가 살고 있는 취푸라는 지역에서 만든 공부가주(공씨 집안이 만든 술이란 뜻)를 마시며 신입사원 환영식을 했습니다. 2012학번이라고 하니, 1995학번인 저와는 17년의 시간갭이 있었습니다. 그토록 어렵다는 취업의 관문을 뚫고 대기업에 들어왔으니, 과히 신과 함께 영화 속 “귀인”을 만난 듯 합니다. 저 또한 차사가 되어서 취업의 지옥문을 뚫고 합격의 세계에 들어온 “귀인 신입사원”을 보니 아수라장 같은 현실이 무섭기도 하고, 지옥귀를 헤쳐온 “귀인 신입사원”이 부럽기도 하고, 나였으면 “불합격”의 딱지를 받았을 텐데 하는 씁쓸함과 그나마 빨리 들어와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뒤섞인 감정(영어로 Mixed feeling)이 밀려듭니다.
환영식이 파하고, 근처에 있는 맥주집(비턴, B Turn 이라고 읽고 Beer Turn, 즉 맥주 차례다. 또는 맥주로 바꿔라.)으로 향했습니다. 그러자 주변에 다른 직원이 “여기 샘소나이트 가방 안 챙기신 분”이라 말하자, 다른 후배 직원이 그 가방을 챙겨들었습니다. 제가 그 친구에게 “혹시 샘소나이트가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라고 묻자, 그는 왠 생뚱맞은 질문이냐는 듯이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하자 썰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광양에서 근무하는 K씨의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K씨의 질문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선배님처럼 왜?라는 질문을 계속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비법 좀 알려주세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뛰어난 머리를 가진 사람이 아닌지라 별다른 비법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샘소나이트 가방 하나에 단서를 찾아서 얘기해봅니다.
저도 제 첫 캐리어가 샘소나이트였고, 결혼할 때 장모님께서 사준 서류가방도 샘소나이트였습니다. 그만큼 직장인에게 잘 알려진 브랜드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샘소나이트일까요? 아주 예전에 고민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풀어봤습니다. 샘소나이트, Samsonite라고 합니다. 때로는 한글을 영어로 풀어만 써놔도 어느 정도 답이 나옵니다. Samson은 삼성(Samsung)에서 g 하나만 빠진 단어가 아닙니다. 성경 속에 삼손이라고 알려진 유명한 인물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처럼 삼손과 데릴라라는 이야기로 서양 문화권에서는 무척 알려진 인물입니다.
혹시 LG 트윈스 야구선수 이상훈 선수를 기억하시나요? 그 선수의 별명이 삼손이었습니다. 삼손은 유태인으로 머리카락에서 힘이 나온다는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가 데릴라의 꼬임에 빠져서 자신의 힘의 원천이 머리카락에 있다는 사실을 누설하고, 머리를 깎이고 옥살이를 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머리카락이 자라나서 이방인 잔치에서 기둥을 무너뜨려서 거기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죽었던 성경 속 인물입니다. 삼손은 성경 속에서 힘이 장사인 사람의 대표격인 인물인 셈입니다.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은 머리카락에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운동선수 중에서 머리카락이 길고 뛰어난 선수들을 통상적으로 “삼손”이라고 부릅니다. 이상훈 선수가 그 대표격이었고, 이보다 더 잘생긴 안정환 선수는 삼손이란 별명보다는 테리우스라고 불렸습니다.
그리고 Samson에 붙은 ite는 무슨 뜻일까요? 그건 여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뉴욕사람과 런던사람을 영어로 뭐라고 부르나요? New Yorker, Londoner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도시마다, 지역마다 그 곳 사람들을 부르는 영어 접미사가 다릅니다. 그럼 서울 사람은 영어로 뭘까요? Seouler 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Seoulite입니다. 이렇게 ite를 붙여서 OO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으로 Israelite(고대 이스라엘 사람들), Ammonites(암몬 족속)입니다. 그러면 이제 대충 비밀이 풀렸습니다. Samsonite는 삼손의 후예들, 삼손의 족속들 이런 뜻입니다. 대략 “우리는 삼손의 후예들이다.” 이런 뜻인 셈입니다.
샘소나이트(Samsonite)는 Luggage(여행용 짐)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즉 사람들이 무거워서 쉽게 나를 수 없는 여행용 짐을 “샘소나이트(삼손의 후예)”가 대신 들어줍니다. 20킬로가 넘게 나가는 짐을 샘소나이트 가방에 넣어서 바퀴에 굴려서 다닐 수 있는 건 “샘소나이트”와 같은 삼손의 후예의 덕택입니다. 이제 대충 아시겠죠? 샘소나이트가 왜 삼손이랑 연관되고, 샘소나이트가 왜 여행용 가방을 만드는 지 느낌이 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도대체 저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알 수 있었을까요? 인터넷에서 누군가 알려주었을까요? 아닙니다. 그건 아주 작은 질문이었습니다. “Why? 샘소나이트”라는 질문입니다. 살다보면 “왜? Why?”라는 질문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왜라는 질문은 내가 머리를 굴려야 할 많은 이유를 던져주기 때문입니다.
그럼 전 어떻게 왜?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질 수 있을까요? 저는 회사에 오면 대략 8시부터 9시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씁니다. 제 스스로 생각의 창을 활짝 열어두는 겁니다. 아주 오래 전 어린 시절에 “이상한 나라 폴”이라는 만화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만화속에 폴은 대마왕에게 붙잡힌 니나를 구해내기 위해서 이상한 나라에 찾아갑니다. 아주 짧은 순간 이상한 나라로 가는 문이 열리고, 거기에 가서 온갖 고생과 어려움을 겪고 다시 그 문을 통해 현실로 돌아옵니다. 결국에는 대마왕의 손에서 니나를 구해냅니다!!!
저는 그 때의 이상한 나라의 폴이 됩니다. 매일 08:00 ~ 09:00가 되면 이상한 나라의 폴은 의심의 문을 젖힙니다. 제가 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한 많은 문제에 대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저는 그 시간을 8090의 문이라고 명합니다. 그 의심의 문을 젖히고 대략 1시간 정도 이 세상을 벗어나 이상한 나라에 들어가 제 마음대로 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쓰고, 책도 읽고, 잡생각도 합니다. 그리고 09시 과업이 시작되면 의심의 문은 잠시 닫아 놓고 현실의 세계에서 두 발을 딛고 살아갑니다. “Why? 샘소나이트”도 그 의심의 문에서 함께 돌아온 선물인 셈입니다.
이제 글을 마칩니다. 샘소나이트 가방을 가진 그 후배에게도, 광양에서 근무하고 있는 K씨에게도 자신만의 8090의 문을 갖기를 추천합니다. 24시간 중에 오롯이 의심의 문을 젖힐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보고, 그 시간을 마음껏 향유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언젠가 나는 “이상한 나라의 폴”이 되어서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겁니다. 비록 그 답이 틀리거나, 엉뚱한 답이라고 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찾은 건 완벽한 해답이라기 보다는 좋은 질문(Good Question)과 왜?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찾는 마음가짐(Attitude)입니다.
P.S 간만에 마음에 드는 글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