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한글이 없으면 표현하기 힘들다.
뇌가 좌뇌와 우뇌로 이루어져 있고, 새는 좌우 날개를 균형삼아 난다고 합니다. 인간(Human being)이라는 존재 자체가 모순덩어리이며, 욕망에 사로잡힌 소멸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인류(Humankind)는 모순을 극복하고, 무한의 욕망을 제어하고 관리하기 시작했고, 예술, 문명, 과학을 통해서 불멸을 꿈꾸기도 합니다. 저도 20세기 말에 지구라는 별에서 태어나서 인류가 겪은 최악의 전쟁인 1,2차 세계대전도 피하고 한민족 역사상 가장 최악의 시기 중에 하나였던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모조리 비껴나가는 행운을 얻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에 존속했던 인류의 총합이 100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저는 0.000001%에 속한 행운아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20세기 초기에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분명 1,2차 세계대전에 휘말려 30살도 되기 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고, 20세기 초에 한국에 태어났다면 일제시대에 일본말을 배우고, 큐슈 탄광지역에 징용가서 온갖 고초를 겪었을 지도 모릅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서 큐슈에 있는 탄광에서 징용을 살았다고 하니, 제가 누리는 행운의 절반 이상은 할아버지 세대가 당한 어려움에 대한 보상인 셈입니다.
지금의 시기만을 보면, 나의 인생도, 당신의 인생도 “괴롭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쭉 펼쳐보고 지금껏 지구별에서 살았던 모든 인간 중에 한 명으로서의 나를 살펴보면 어떨까요? 흑사병으로 죽을 걱정하지 않았고,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무임금 노예로도 살지 않았고, 동학운동에 동참하여 죽창에 찔려 죽지도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 보면 행운을 타고 난 건 사실입니다. 다행히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손을 태어나거나 조선의 왕족으로 태어나서 다행히 왕위를 물려받으면 다행이긴 하나,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시집 잘못 가서 단두대에 이슬로 사라질 수 도 있고, 단종처럼 욕심 많은 세조 삼촌을 만나 영월에서 유배당하고 목졸려 죽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나를 본다면 실망스러울 수 도 있지만, 인류 전체를 조망해서 나를 본다면 딱히 절망할 만한 상황은 아닌 셈입니다. 그렇다고 염세적 삶을 살아서는 안되겠죠. 절대적으로는 행운에 속한 세대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는 우리의 삶의 질과 수준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한민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단 1명 꼽으라고 하면, 전 단언코 “이도, 세종”을 선택하겠습니다. 세종대왕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우리는 한자를 쓰고 있을 가능성이 90% 이상입니다. 아마도 20세기 초에는 한자 대신에 영어로 차음하여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Na Nun Hangul Ul SSun Da : 나는 한글을 쓴다.” 라고 말입니다.
위대한 조상 “이도, 세종”님 덕분에 우리는 자유롭게 나의 생각과 의사를 한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제 “8090의 문”이라는 소재에 대해서 글을 썼습니다. 저는 아직도 의심과 호기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데카르트가 쓴 방법서설을 읽고 감탄을 금하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가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는 이성주의자 입니다. 하지만 나의 사유와 생각도 글로 표현되지 못하면 그저 찰라의 기억에 불과합니다. 한글이라는 텍스트를 선사 받은 행운으로 지금도 자판을 두드려 나의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습니다.
20세기 말에 지구별에 태어난 행운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행운이 불행으로 점철되지 않도록 저도 노력하고 살고 싶습니다. 내가 잘 사는 것보다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도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잘 산다는 말이 “모두가 부자가 되는 사회”가 아닌 세상의 공의가 넘쳐나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단편적인 생각들을 글로 담고, 나의 말과 글이 행동으로 변화되고 제가 속한 가정, 회사, 교회,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런 계기를 만들어주신 “이도, 세종”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마칩니다.
P.S 원래 제목은 “나의 헬라니즘과 헤브라이즘 (부제 : 냉정과 열정사이, 이공계 탈을 쓴 몽상가)” 였는데 주제가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조만간 원래 생각했던 바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