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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쥐의 서울 나들이

어서와, 서울은 오랜 만이지?

by 정윤식

간만에 서울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2014년 12월 1일에 서울에서 포항으로 옮겨온 이후에 1년에 1번 정도 출장 갈 일이 있긴 했지만, 지난 2년 동안에는 포항에서 쭉 지냈습니다. 신입사원 면접관으로 참석해달라는 인사부서의 요청을 덥썩 물었습니다. 간만에 바람도 쐴 겸 그 동안 P센터에 테라로사 카페도 새로 들어왔다고 하길래 구경도 겸하기로 했습니다. 9시 반부터 면접이 시작되어서 포항발 KTX 첫차(05:50분)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천장이 높은 서울역사 안에는 또각또각 하이힐, 남자구두 소리가 공명음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다들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아, 드디어 서울에 도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포항 시골 쥐에서 서울 쥐로 변신할까 생각하다가, 뒤에서 밀려드는 인파 속에 뭍혀서 급류에 휩쓸리는 고목마냥 떠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있는 선릉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울역에서 4호선을 타고 사당역에 내려, 2호선으로 환승하고 사당에서 선릉역까지 이동합니다. 서울에서 지낼 때에는 필수앱이 ‘지하철 노선도’ 였는데, 포항에서 살다보니 지하철 노선도 앱도 지워버렸습니다. 지하철 차량에 탑승하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게임을 하는 사람, 동영상을 보는 사람, 음악을 듣는 사람.. 모두가 무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포항에 있을 땐 몰랐는데, 애플 에어팟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아마도 출퇴근 시간이 긴 탓에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볼려면 좋은 음향기기가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추측도 해보지만, 그에 더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표징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사람은 1개 차량 안에 1~2명 될까 말까 합니다. 그만큼 삶에 여유가 없어진 탓도 아닐까 생각해보며, 저도 가방안에 있는 조정래의 ‘한강’이란 책을 펼쳐놓고 읽어 봅니다.


회사에 도착해서 신입사원 면접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철강회사인데, 아무래도 이공계를 전공한 신입사원을 많이 채용합니다. 그 날 대략 60명의 지원자를 면접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 정말 맘에 드는 지원자는 대략 10% 정도인 6~7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느끼지만 항상 공통점이 있습니다. 보통 자신의 의견을 과도하게 자신있게 말하는 지원자에게 전공질문을 하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21세기 최고의 창의적 인재라고 소개하고, 무엇보다 전공이 재미있고, 잘했다는 지원자에게 가장 기초적인 질문을 던지면 동문서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말을 조곤조곤 하는 지원자 중에 전공에 대해서 툭툭 던지면, 감탄할 정도의 답변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학교의 서열이라고 지칭하는 일류대학 출신들도 횡설수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중고 까지는 부모의 재력, 관심, 도움이 어느 정도 플러스가 될 수 있지만, 대학 전공과목(특히 3~4학년)은 자신이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저 학습할 수 없습니다. 지방 국립대학 이나 지방 사립대학을 나왔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자신이 스스로 학습하고 공부한 지원자는 답변하는 레벨이 다른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저녁 7시가 넘게 신입사원 면접을 하고 나니, 진이 다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남을 평가할 만한 인생을 산 것도 아니고, 그들을 당락을 정할 만큼 실력이 있지도 않지만 주어진 역할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 벌써 밤은 깜깜해졌습니다. 하루에 지친 수많은 서울 사람들이 덜컹이는 지하철에서 지친 몸을 싣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 여기가 서울이구나’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아침 일찍 서울사람들의 바쁜 발걸음과 퇴근 이후의 서울 사람들의 치진 표정을 보며, 시골 쥐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저렇게 살았구나! 고난한 하루를 버티며 살았구나!’


서울역에 도착해서 버거킹으로 저녁을 먹고, 다시 KTX 플랫폼으로 향합니다. ‘어서와, 서울은 오랜 만이지?’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저는 시골 쥐로 사는게 더 좋습니다. 서울 쥐로 4년 반 넘게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갑갑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는데, 포항에서 살면서 갑갑한 마음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답답한 마음은 지금도 들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 하고 여러 번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바다”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고 보이는 포항으로 이제 향합니다. 시골 쥐의 서울 나들이는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P.S 또 언젠가 서울에서 가서 살 날이 생기겠죠? 생기지 않을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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