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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May 23. 2019

잃지도 얻지도 않고 공유하다.

공유결합으로 부터 얻은 인생의 단상

 나는 개인적으로 공적인 나와 사적인 나를 철저히 분리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나 배너 박사와 헐크 처럼 다른 두 개의 인격체로서의 분리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분리를 의미한다. 난 회사에서 주어진 근무시간 이외에는 왠만해서는 회사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주중 야근이나 주말 야근은 내게 피해야 할 일상 중에 하나이다. 의도된 분리와 의식적 자기 선택이 내 개인 생활과 회사 생활 모두 풍요롭게 만든다. 나를 바라보는 회사의 많은 분들이 미덥지 않게 생각하기도 하고, 회사에 충성하지 않는 나를 보며 탐탁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나라는 사람은 나에게 개인적 시간과 공간을 주어져야 공적인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공과 사의 분리가 하나로 융합되는 공간이 있다. 나의 외적인 환경은 분리하여 구별짓지만, 내적인 마음과 생각은 칼같이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통합되고 엉켜 비빕밥이 된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외적 환경의 철저한 분리가 내면의 창조적 융합을 일으킨다. 어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S사 임직원이 회사를 방문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앞으로 협력해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S사의 대표로 오신 임원에게 메일를 보냈다. 메일의 일부 내용을 실마리 삼아서, 거기에서 영감을 얻고 여기에 글을 남긴다. 다시 말하자면, 내 공적인 영역인 “회사의 일”이 내 사적인 영역인 “브런치의 글”이 되었다.  글을 쓰는 이 시간은 철저히 과업 시작하는 9시 이전에 쓰고 있다. 라임이 딱딸 떨어져 맞는다.


 공유경제에 대해서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에어앤비, 우버, 타다에 이르기까지 공유경제 비즈니스가 성황 중에 있다. 사유재산에 대한 인정으로 시작한 자본주의가 21세기에 와서 사유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기 시작했다. 칼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프롤레타리아(무산자)에 의한 혁명으로 부르주아(자본가)를 뒤집어 엎고 국가 경제를 공유하자는 그의 자본론이 또 다른 버전으로 실현되고 있다. 우버나 타다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은 기업가(앙트레프레너)에 의한 기술혁명으로부터 사실상 자기고용 노동자(택시기사)를 뒤집어 엎고, 자동차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혁명의 주체가 프롤레타리아에서 앙트레프레너로 변하고, 변해야 할 대상은 부르주아에서 자기고용 노동자로 변했다. 혁명은 일어나지만, 혁명의 주체와 대상이 뒤바뀌어 가는 게 칼 마르크스의 아이러니다.


  매일 마시는 물(H2O)은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로 결합되어 있다. 화학적으로 말하면 공유결합(Covalent Bond)을 하고 있다. 대학시절에 배운 일반화학을 배운 바에 따르면, 전자(Electrons)을 공유함으로서 원자가 분자의 형태를 이루는 게 공유결합이다. 이에 반해 소금(NaCl)과 같은 이온결합은 나트룸(Na)이 전자 하나를 염소(Cl)에게 준다. 나트룸은 양이온(Na+)이 되고, 염소는 음이온(Cl-)이 된다. 이온결합은 전자를 얻고, 잃어야 발생하는 결합형태에 비해 공유결합은 전자를 잃지도 얻지도 않고 공유한다. 기브 앤 테이크의 방식이 아니라, 쉐어(Share)하는 방식이다.


 보통 기업은 물건을 소비자 또는 다른 기업에 판다. 소비자에 파는 기업을 B2C라고 하고 기업에 파는 기업을 B2B라 한다. 이럴 때 관계가 기브 앤 테이크 방식이다. 요즘은 물건이나 상품을 서로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나 상품을 매개체로 공유하고 서비스와 효용을 사고 판다. 그래서 공유경제의 개념이 생겨났다. 내가 가지고 있는 차라는 상품을 매개체로 이를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고, 이동이라는 서비스와 편리함이라는 효용을 사고 파는 것이다. 나는 S사 임원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기술력, 정보, 인적 자산, 제품을 기브 앤 테이크 방식이 아닌 그걸 매개체로 서로 공유하고 서비스와 효용을 교환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술협력이라는 걸 제안했고, 진자하게 검토하고 시간을 두고 고민해보기로 했다.


 에르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Haben Oder Sein)”이라는 책에서 소유와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 했지만, 요즘은 “소유냐 공유냐”로 논의한다. 이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 방식으로 살아가면 합리적이다. 돈을 주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는 행위가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룬다. 또한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기브 앤 테이크 방식의 이온결합이 그 힘을 다할 때가 있다. 그 관계는 주는 자와 받는 자가 고착될 때 갑과 을로 비화되고,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누어 질 때 사회적 분열을 야기시킨다. 하지만, 서로 공유할 때는 상호 관계에 자유도가 생긴다. 산소는 수소 2개 없이는 물이 되지 못한다. 전자를 서로 잃거나 얻는 게 아니라 서로 공유할 때 그 어떤 결합보다 강력한 결합력을 유지하게 된다.


 나는 S사와의 관계가 서로를 공유함으로서 보다 건설적이고 강력한 결합이 되길 기대해본다. 또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A를 주고 B를 받는 형태가 아닌 C를 함께 공유하길 기대한다. 사랑하는 아들과 놀아주는게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과 시간을 공유하고 같이 노는 아빠가 되고 싶다. 공유결합으로부터 공유경제를 생각하고, S사와의 기술협력을 검토하고 있는 이 즈음에, 나는 앞으로 덜 소유하고, 더 많이 공유하여 이 시대에 공유경제를 실천하는 공유가 되고 싶다. (도깨비 공유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도 공유가 될 수 있다.)


P.S 간만에 재미나는 글을 써봤습니다. 자주 자주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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