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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Aug 06. 2019

난 이제 일본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

냉정과 열정 사이, 정치적 결정에 대하여

 맥주의 나라 중 하나인 벨기에에 1년 반 동안 해외주재원으로 지낸 이후에 “맥주 한잔”은 내 삶에 중요한 즐거움 중에 하나가 되었다. 벨기에 맥주 중에서는 듀벨, 스텔라 아르투아, 시메이, 레페 브라운을 좋아했다. 독일 맥주는 파울라너, 벡스, 에르딩거를 좋아하고, 뒤셀도르프 지역 맥주인 알트 비어를 제일 좋았다. 그 외에도 기롤쉬, 칼스버그, 필스너 우르켈, 코젤, 1664 블랑 등 여러 나라 맥주도 좋아하는 편이었다. 물론 일본 맥주도 4캔에 만원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버킷리스트였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맥주 중에서는 산토리 맥주가 내 입맛에 맞았다. 아사히, 기린, 삿뽀로, 에비스도 마셔 봤지만 산토리 맥주의 리치(Rich)한 풍미는 단연 최고였다. 하지만 난 이제 일본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뽕에 취해서 한국 맥주를 더 많이 찾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 나온 테라라는 맥주가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수입맥주를 마시는 건 행위는 만원으로 살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다. 스텔라 아트루아를 마시며 브뤼셀 그랑플라스를 추억하고, 벨기에 감자튀김(프리츠)를 마시던 추억을 소환하는 “의식주”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파울라너 한 잔으로 뮌헨 시청사 옆 호프 브로이하우스에 듣던 “아리랑” 연주를 기억하고, 아우토반에서 200킬로로 운전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이 힘들어 질 수록 일상을 달래기 위한 나만의 정화의식은 소소하게 “수입맥주 4캔의 만원” 행사로 이어졌다. 그래야만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일본에도 여러 번 다녀왔다. 도쿄는 3번, 오사카 1번, 후쿠오카/벳부 2번을 다녀왔다. 물론 일본 사람들의 질서의식은 대한민국 사람이 배워야 할 점 중에 하나이고, 질서, 청결, 서비스 등 민주사회에서 개인적으로 지켜야 할 시민의식은 아시아에서 수위를 다툰다.


 하지만,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의식은 20세기 초반에 머무른 듯하다. 일본은 “마치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퇴직하고 여생을 편히 사는 60~70대 노인”같다. 깔끔하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려는 의식이 뿌리깊이 있지만, 나라 전체적으로 힘이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인의 시민의식은 아시아 최괴이지만,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시민의식은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 그들은 국가에 복종하는 법은 알고 있어도, 국가에 저항하는 법은 알지 못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촛불혁명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리고 한 개인은 절대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되지만, 국가는 남의 나라에 피해를 입히고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이를 부정하고야 만다.


 난 일본 영화이긴 하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에 있다. 일본 맥주를 마시지 않는 나의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소비결정은 분명 열정에 있다. 나 또한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열정”적이다. 그래서 일본 맥주를 마시지 않고, 유니클로를 입지 않고, 미쓰비시 볼펜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냉정”의 정치적 결정도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일본 경제와 예속되지 않는 냉정이 필요하다. 난 산토리 맥주 대신에 크롬바커 맥주를 마시면 된다. 캠리, 렉서스 대신에 벤츠, 현대자동차를 타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에 지고 있는 많은 분야가 있다. 내 취미는 자전거 타기인데, 우리 집 자전거에는 모두 시마노 변속기가 달려있다. 일본제품은 싫지만, 시마노 변속기를 모두 버릴 수는 없는 법이다.


 만약 인텔이 일본기업이었다면, 모든 컴퓨터를 버릴 수는 없는 법이지 않는가? 세계 경제가 글로벌되고, 공급체계가 전세계에 있는 마당에 일본의 정치적인 의사결정은 스스로 자멸하는 길임을 그들도 모르지 않을텐데, 왜 그랬을까?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만만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더이상 중국, 미국, 러시아를 쉽게 간을 보며 건들이지 않는다. 자기보다 쎈 상대에게 붙어봐서 “쌍코피” 터진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일본 정치인들은 대한민국이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의 힘없고 약소한 “조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조센징”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제 일본에게 지지 않으려면, 일본 맥주를 마시지 않을 “열정”도 필요하지만, 캠리보다 렉서스보다 더 좋은 차를 만들 줄 알아한다.


 그들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를 배제할 때 한 방 날린 것 처럼, 우리도 그들에게 한 방 날릴 “킬러 아이템”이 필요하다. 킬러 아이템은 열정만으로 만들 수 없다. 일본에 지지 않으려면 유니클로를 입지 않을 열정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에서도 유니클로와 같은 킬러 아이템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있는 “독”을 하나씩 버리고 오랜 시간에 걸려서 냉정을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정치적 결정을 해야 한다. 산토리 맥주를 마시지 않을 결정도 필요하지만, 산토리 맥주보다 더 맛있고 경쟁력 있는 대한민국 맥주를 만들어 하는 노력도 필요한 법이다. 일본에 대한 정서는 죽창을 들고 일어선 동학혁명군의 “열정”도 필요한 법이지만, 죽창으론 총을 이길 수 없다는 “냉정”한 계산도 필요하다.


 우리 모두 이제 더이상 일본에 지지 않을 열정도 가져야 하지만, 일보에 지지 않을 냉정도 마음 속 깊이 간직했으면 한다. 내 생각엔 10년 이상 긴 싸움이 될 것같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에 일본에 졌던 역사의 기억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지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지지 않아야 한다. 오랜 싸움이 될 것 같지만, 적어도 압도적으로 이기진 못해도 우리 세대에는 절대 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아이들 세대에는 압도적으로 이길 것 같다. 그러면 일본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맥주는 산토리 맥주가 아니라, 카스나 하이트가 될 지도 모른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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