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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Mar 31. 2020

나는 똑바로 걸어가고 있는가?

청춘의 미스터리 : 불확정성의 원리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남겨봅니다. 2월에 회사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했던 대학 4학년생 피 끓는 청춘이 저에게 던진 화두가 있었습니다. 원래 물어본 주제는 “내가 걸어가는 길의 방향성”이었는데 좀 쉽게 “나는 똑바로 걸어가고 있는가?”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이 시대를 포함해서 전 인류의 청춘들은 방황합니다. 하이젠베르크가 말한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청춘은 위치(내가 어디에 있는지?)와 운동량(얼마나 잘하고 있는지?)을 확정하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어쩌면 청춘의 미스터리가 아니라 인생의 미스터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 같은 40대 중반은 대충 어제 어디로 갈지 상당히 확정되어 있는 반면 취업을 앞둔 취준생들의 마음은 새벽 인력시장에 나오는 인부의 모습처럼 어디 공사현장으로 갈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가득합니다.


오늘은 바람에 흔들리어 위태롭게 불꽃을 태우는 촛불 같은 청춘들(아니 인생들)을 위해 글을 써봅니다.


제목 : 나는 똑바로 걸어가고 있는가? (부제 : 청춘의 미스터리, 불확정성의 원리)


 1976년생인 저도 이 땅에서 산 년수만 43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의 방향성을 지금에 와서 보면 일직선으로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살, 30살, 40살에 선택했던 길들을 이어 보면 지그재그 투성입니다. 또한 내리막은 얼마나 가파른지, 오르막은 언제 끝날지 모를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게 유효하고 무엇보다도 제 성격에 맞는 지침이 있어서 아래와 같이 정리해서 말해보겠습니다. 제 지침이 당신에게는 교과서가 되지 않고 참고서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너무 진지하게 성경을 보는 마음보다는 인터넷 댓글을 읽는 가벼운 마음만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1. 어차피 출발점은 다릅니다.

 요즘 흙수저, 금수저 이슈가 뜨겁습니다. 사회적 불평등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사회적으로는 불평등을 고쳐서 변화시켜야 합니다. 아바의 노래 제목처럼 “Winner Takes All.”하는 사회구조를 변혁해야 합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어떠한 국가도 불평등이 가중되면 반드시 멸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아닌 한 개인의 차원을 살펴보면 다릅니다. 내 친구 부모님은 둘 다 S대 출신에 전문직(의사, 판사 등)이고, 타워팰리스에 산다고 합시다. 하지만 내 부모님은 모두 중졸이시고, 아직까지 달동네 월세에 산다고 합시다. 아무리 내 신세를 한탄하고, 세상을 원망해도 내 부모님과 지금 나의 환경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이 세상 누군가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존재하고, 나보다 더 좋은 환경은 가진 사람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은 출발점이 다릅니다. 출발점이 다르다면 사회적 차원에서는 불평등을 개선하고 변화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내가 “내 친구가”가 되지 않는 한 난 절대로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바뀌지 않습니다. 먼저 출발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생김새, IQ, 성격이 다릅니다. 그렇게 주어진 환경(Given Circumstances)에서 수동적인 자세나 생각을 백날 해봐야 달라지는 게 1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환경에 압도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 동물인지라, 애초 출발점이 다르면 달리고 싶은 의욕도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내가 달려야 하는 이유가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완주하기 위해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내가 걸어가는 길의 방향성은 첫 번째로 “나의 출발점”에 압도당하지 않고 인정해야 합니다. 어차피 출발점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내 길을 걸어가는 자세를 다지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내게 주어진 환경에 비관하거나, 내게 주어진 좋은 환경 때문에 기고만장한 안하무인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자세를 완주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2. 인생은 고민의 양보다는 행동의 양으로 바뀝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한다고 하면, 계속 계획만 짜고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좋아하는 이성이 생겼을 때 고백할까 말까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서 많은 고민을 합니다. 제 같은 경우는 고민의 양보다 행동의 양으로 제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은 밀도 있게 하되, 고민의 양을 절대로 늘리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더 큰 걱정을 불러오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내가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무심할 정도로 걱정이나 고민을 안 합니다. 고민을 해봐야 내가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저는 행동의 양을 늘립니다. 주변에는 결정장애를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간단한 점심메뉴를 정하는데도 “아무거나”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정장애가 많습니다. 그러니깐 지금 본인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 있다면, 그 고민으로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고민의 양을 늘리기보다는 행동의 양을 점점 늘리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만 하지 말고, 오늘 저녁이라도 집 밖을 나와 동네 한 바퀴라도 걸어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행동의 양을 점점 늘리다 보면, 중요한 위기 상황이나 결정적인 순간에 신속한 결정에 따른 확실한 행동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점심메뉴는 아무거나 아닌 “짜장면, 초밥, 라멘 등”을 자연스레 답할 수 있습니다.


3. 더 적게 하는 후회보다는 더 큰 성장을 위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더 적게 하는 후회보다는 더 큰 성장을 위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덜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더 성장하는 게 좋습니다. 나보다 성적이 안 좋은 친구가 나보다 더 빨리 대기업에 합격하고, 나는 오랜 취준생으로 고생할 수 있습니다. 그때 재수할 걸, 그때 취업이 더 잘되는 전공을 선택할걸... 이런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하지만 내가 더 잘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할 만한 일이라면 후회하지 마시고,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선택을 하게 될 때는 내 인생 전부를 걸고 더 적게 하는 후회보다는 더 큰 성장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내가 잘하는 일이면 제일 좋지만, 내가 잘하는 일이 내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도 할 수 있고, 그 취미가 나중에는 더 큰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저도 사실 취미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글을 마치겠습니다. 언젠가 12살 아들이 저에게 묻더군요. “어떻게 하면 선생님과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도 이 질문을 받고 솔직히 얘기했습니다. “아빠도, 회사에서 어떻게 하면 부장님, 상무님의 기대에 충족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저도 잘 모르는 인생의 비밀을 아들에게 알려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24살 인생이 어렵고, 불확실한 삶입니다. 내 인생을 남이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어찌 되었던 내가 주인공인 인생입니다. 저 또한 내 삶을 이어온 방향성을 볼 때 똑바로 걸어왔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어차피 나도 모르는 인생의 비밀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저는 3가지 원칙을 실천하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행복하고, 성장하고 있으며, 행동을 통해서 제 삶을 앞으로도 계속 변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길게 썼지만, “네 멋대로 해라”입니다. 다시 한번 제 글이 “교과서”가 아닌 “참고서”이길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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