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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ul 20. 2020

급이 아니라 격으로 산다.

급이 높다 하여 격이 높지 아니하고, 급이 낮다 하여 격이 낮지 아니하다

 지난주 화요일에 대학 동문 4명이서 전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인근에서는 꽤나 유명한 맛집이라고 하는데, 직장생활 17년 차인데도 처음 와보니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은 모양이다. 자리에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 아이들 얘기로 이야기 꽃을 한창 피우고 있었는데 옆자리에도 지인, 건너방에도 지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평소에 빈말로 저녁 먹자는 약속이 떠올라 자리를 옮겨가며 안부를 전하고 잘 버티고 열심히 살자는 다짐도 함께 하였다.


 옆 테이블은 공장장인 내 동기가 10살은 넘게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거기에서 했던 담화를 주제 삼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본다. 나는 천상 어깨에 짐을 메고 이 산, 저 산 넘어가는 떠돌이 장돌뱅이 인생인가 보다. 회식 다음날 동기에게 보낸 이메일의 주제 삼아서 한 편을 글을 써본다.


제목 : 우리는 급이 아니라 격으로 산다.


안녕하십니까? 공장장님, (여기서 공장장님은 제 동기입니다.)

어제 OO전집이 A부서의 단골집이란 걸 처음 알았습니다. 덕분에 공장장님과 멋진 석식을 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이런 걸 영어로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한다고 합니다. 아주 우연히 만난 인연이나 발견을 통해 매우 기분 좋은 상황을 말한다고 합니다. 저도 오래간만에 우연히 합석한 자리에서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나가다 오며 가며 얼굴만 봤던 엔지니어를 보니깐 A부서의 미래가 매우 밝다고 느꼈고, 공장장님을 중심으로 모여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보니깐 우리 회사 조직문화가 점점 수평적으로 변해가는 걸 느꼈습니다.


어제 옆에 있는 엔지니어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회사에서는 “급”으로 일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는 “격”으로 만난다고 얘기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사장, 부장, 팀장, 과장, 대리, 사원과 같은 “급”으로 나눠고 역할에 맞춰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업무상으로는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꼭 “급”이 높다고 해서 “격”이 높다고 볼 수 없고, “급”이 낮다고 해서 “격”이 낮다고 볼 수 없습니다. 사장도 급을 떠나서 사원과 어깨를 함께 할 수 있고, 사원도 때에 따라서는 급을 떠나서 회장에게 직언을 할 수 있습니다. “급”이 높아지는 만큼 “격”도 함께 올라가고 “급”이 높아질수록 권위(권위주의가 아니라)도 함께 올라가야만 다음 세대를 준비할 수 있는 회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제 만난 엔지니어 분들은 적어도 B공장장님과 저에게만은 “급”이 아닌 “격”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급”이 아닌 “격”으로 받아들이고, 진정한 소통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A부서는 B공장장님과 여러분들이 계셔서 앞으로 “격”이 높은 A부서 조직문화를 이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동기 중에서 유달리 부럽고, 자랑스러운 사람이 많은데, 그중에 B공장장님이 TOP3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가 일은 “급”으로 하고 살지만, 인생은 급이 아니라 격으로 산다는 말을 실천하고 살도록 합시다. 우리 동기 세대가 앞서 나간다면 뒤에 오시는 후배님들이 우리보다 더 멋진 회사를 만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우리 세대는 씨를 뿌리고, 다음 세대는 열매를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이황(1502년 생)과 기대승(1527년 생)은 25살의 나이 차이와 차원이 다른 급 차이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로 격으로 사단칠정을 논쟁하였습니다. 우리는 급이 아니라 격으로 살아갑니다.


P.S 여름 같지 않은 여름이 지나갑니다. 오늘 같은 날은 김현철의 32도 여름이 제격입니다. 제 글도 참조하세요. http://brunch.co.kr/@yswillygvb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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