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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Jul 28. 2022

거울 속의 거울

나를 보는 나를 다시 보다.

월요일 퇴근길, 라디오 클래식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명징하게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과 가슴에 스며드는 바이올린 선율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잠시 약 3분간 앞 차의 붉은 브레이크 등만 응시한 채 음악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음악이 끝나고, 디제이는 “거울 속의 거울”이라는 제목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난 음악의 여운을 간직한 채 집에 도착해서 “거울 속의 거울”이란 음악을 검색했다. 에스토니아 국민 작곡자인 아르보 패르트란 분이 작곡한 곡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곡은 이번 주 내내 내 음악 플레이리스트에서 올라와서 내 마음을 적시고 있다. 이 곡은 우리나라에서 엄청나게 히트한 영화 어바웃 타임에도 삽입곡으로 쓰였다고 하니, 인터넷에 검색하면 쉽게 찾아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거울 속의 거울이란 곡은 피아노라는 “내”가 있고, 바이올린이라는 “내”가 있는 상황을 말해주는 듯했다. 귀에 박히게 들리는 피아노는 이 세상에서 몸이라는 실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나”이고, 희미하게 끊어질 듯 말 듯하면서 들리는 바이올린은 내 몸 뒤에 여러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같았다.


비록 몸과 맘이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현실에서 누군가가 “요즘 잘 지내고 있지?”라는 말에 피아노로 대변되는 “나”는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하지만, 바이올린의 나는 “아니요. 요즘 잘 지내지 못합니다. 마음 같아선 다 내려놓고 한 달 정도 쉬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합주로 이어진다. 바깥에서는 씩씩하게 살아가는 “나”와 내 안에서는 털썩 주저앉고 쉬고 싶은 “나”가 서로 갈등하기도 하고 협력해서 살아간다. 그래서 거울 속의 거울이라는 작품이 내 마음을 잘 표현하는 거 같아서 빠져들었다.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잠이 오다가도 슬픔에 못 이겨 울 것 같으면서도 고조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선율에 힘을 얻기도 한다.


거울 속에 거울이 있는 나를 본 적이 있는가?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바라보는 나를 지켜본 적이 있다. 거울 속의 나는 40대 중년 아재의 비루한 몸이지만, 나를 바라보는 나는 슬프면서도 씩씩했다. 그런 나를 보는 나를 지켜보는 것이 바로 “거울 속의 거울”이다. 우리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이 의식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아가는 건 어떨까 한다.


이번 주 내내 거울 속의 거울을 들으며, 나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피아노의 나와 바이올린의 내가 서로 각자의 길을 가면서도 평행으로 달리는 기차 레일처럼 같은 방향으로 간다고 믿는다. 오늘은 다른 음악 대신에 이 음악으로 채워본다. 나를 보는 나를 다시 보게 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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