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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Aug 12. 2022

새치와 흰머리

흰머리와 함께 살기로 했다.

어릴 때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서 귓밥을 파고 나면, 늘 엄마는 새치를 뽑아달라고 하셨다. 새치 하나에 용돈 10원을 주신다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새치를 뽑았다. 혹여나 새치와 검은 머리를 함께 뽑으면 용돈 10원은 차감되는 식이었다. 그래서 새치를 20~30분 정도 뽑고 나면, 동네 슈퍼에 가서 하드라고 불리는 아이스크림을 먹곤 했다.


내 나이가 그때 엄마 나이쯤 되자, 아침 샤워 후 세면대에서 거울을 보면 새치가 힐끗힐끗하게 나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며 3~4가닥을 뽑아보기도 했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살다가 40대 중반을 넘어가자 새치는 어느새 내 머리카락 속에 게릴라처럼 점령을 하더니 20~30% 정도는 자신의 세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새치를 뽑지 않고, 흰머리와 함께 살고 있다.


요즘은 ㅁㅁ삼푸로 유명한 갈변 샴푸가 나 같은 중년 아재에게 큰 인기이다. 간편하게 흰머리를 감출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나도 한 번 사볼까 하다가 비싼 가격표와 대충 살자는 마음으로 아직은 사보지는 못했다. 주변에서 흰머리가 많이 늘었다면서 염색을 권유하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번 미용실에 갈 때마다 미용사가 권하는 염색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해보기도 했다.


문득, 이 사회가 그러한 게 아닌가 싶다. 검은 머리가 많은 “검은 나라”에서는 새치가 매우 튀어 보이고, 반동분자이다. 그래서 이 사회는 특이하거나 독특한 분류의 사람들을 뽑아내고 걸러낸다. 유대인, 동성애자, 장애인, 여성, 유색인 등 “검은 나라”에서는 그들은 “새치”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늘 뽑히고, 버려지고, 학대받았다.


그러다가 새치는 혼자서 튀지 않고, 다른 흰머리카락과 연대해서 한꺼번에 출몰한다. 그랬더니, 새치를 뽑아내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또 새치를 뽑다가 그 옆에 있는 검은 머리카락도 뽑아내는 불상사도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치가 어느 정도 세력을 이루면 대다수는 흰머리와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그러려면 시간과 새치의 연대가 필요한 법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새치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이제 새치도 흰머리가 되었으니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또한 새치와 검은 머리가 섞여 있으니 다 함께 흑갈색으로 염색하자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그 무엇이 되었던, 우리는 새치를 뽑지 말고 흰머리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 나이가 더 들면 “검은 머리”가 “흰머리” 나라로 바뀌면 검은 머리를 뽑으려 할지도 모른다.


나는 새치를 뽑다가, 흰머리와 함께 살기로 했다. 그리고 흑갈색으로 염색을 하던, 하지 않던 상관없이 검은 머리와 흰머리고 같은 공간에서 뿌리를 내리공존하며 사는 지혜를 배우려고 한다. 이제 흰머리, 검은 머리  올이라도 아껴야 하는 중년의 아재가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속에 있는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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