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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Sep 05. 2022

나는 한 번은 날카로운 칼이었나?

한 번에 올릴 것이냐? 2번에 끊어서 갈 것인가?

오랜만에 다시 글을 써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변화의 시기가 매우 더딘 시점이 있다. 인생의 전반전은 끝이 나고, 후반전도 어느덧 벌써 5분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분명한 목표가 있지는 않지만, 나에게 주어진 90분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즐겁게, 신나게,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

 

대학시절에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은 적이 있다. 드레퓌스 사건을 소개하면서 광기 어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프랑스 지식인들이 싸워야 했던 역사적 테제에 대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떨리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의 저자인 유시민을 알게 되었고, 그가 20대 중반 쓴 "항소이유서"도 찾아서 읽어보았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라는 그의 마지막 구문은 20대 초중반의 나에게도 가슴 떨리는 문장이 되었다.

 

최근에 나는 그가 흰색 죄수복을 입은 채 날 선 눈빛으로 보던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제 유시민은 지식소매상이라는 이름으로 말랑말랑한 유럽여행서를 쓰기도 하고, 가끔 정치 평론도 하며, TV에서 나와 유려한 언변으로 알쓸신잡을 얘기하는 60대 작가 겸 방송인으로 살고 있다. 이제는 그의 눈빛에서 광선이 나오지도 않고, 세상을 향한 반항과 혁명을 꿈꾸는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난 유시민의 눈빛을 보며, 이런 화두를 던졌다. "나는 한 번은 날카로운 칼이었나? “왕년에 나는 말이야. 또는 라떼는 말이야.."와 같은 꼰대의 말투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날카로운 칼이었나?" 하는 성찰과 반성의 질문이었다.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고, 내 능력의 한계를 자각하고, 부단히 부딪히고 깨어진 적이 있었나? 이제는 스스로 한계를 정해버리고, 나를 가두고, 한계를 정해놓고 만족하며 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얼마 전에 아는 지인들과 골프를 쳤다. 오르막 언덕 앞에는 연못(워터 해저드)이 있어서 그린에 올리기에는 좀 먼 거리였다. 난 연못을 피해서 2번 끊어서 갈려고 했는데,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 "평소에 보니, 충분히 넘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소심하게 끊어서 가시냐?"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이 틀린 것 아니었다. 평소에도 충분히 넘길 수 있는 거리가 나오지만, 20~30% 확률로 거리가 짧으면 물에 빠져서 1타 벌타를 받게 된다. 그게 맘에 걸려서, 항상 골프는 안전빵으로 했다.

 

"다른 일에는 도전적으로 살면서, 왜 골프는 안전빵으로 하냐?"라는 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안전하게 살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도전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나 스스로 자꾸 대답을 회피하고야 만다. 또한 나는 과연 "한 번은 날카로운 칼이었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늘집에서 점점 생각이 깊어졌다. 그리고 그 질문들 속에서 앞으로 남아있는 후반전의 삶을 살 것 같다. 연못을 넘겨 그린에 공을 옮길 것인가? 아니면 연못을 피해 안전하게 2번 끊어서 갈 것인가? 이건 삶에 대한 철학의 문제이자 자세의 문제이다. 이제 더 이상 질문에 회피하지 말고, 답을 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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