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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Nov 16. 2022

파울리의 배타원리

우리는 서로 배타적이지만, 함께 공존하고 공유하며 산다.

세상이 날이 갈수록 배타적으로 변하고, 극단으로 갈리고 있다. 서로 배타적으로 상대를 적대하며, 공존하기를 거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내가 대학시절에 배운 파울리의 배타원리는 세상의 배타원리와는 다르다는 걸 알려준다.


1995년 3월에 기계과에 입학해서 수강신청을 했다. 1학년 첫 학기 수업이라서  주로 교양필수, 교양선택으로 과목을 채웠다. 그래도 명색이 기계 공학도라서 수학과목도 선택해보고, 호기롭게 주로 생명공학부 학생들이 듣던 "일반화학" 과목을 신청했다.

 

그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일반화학을 들으면서 가장 생경한 기억은"향기"였다. 기계과 수업은 60명 중에 58명이 남학생들의 칙칙한 땀냄새, 꾸질꾸질한 옷 냄새가 났다. 그런데 "일반화학" 수업은 생명공학부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해서 남학생 반, 여학생이었다.

 

그래서 일반화학 수업시간에 여학생들의 샴푸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서울 출신 교수님의 나근한 목소리는 내 귀에 나지막한 자장가가 되었다. 그래도 대학시절 유일하게 들었던 "일반화학"이 그나마 내가 직장 생활하면서 화학식을 만날 때마다 겁먹지 않아도 되는 좋은 무기가 되었다.

 

일반화학을 배우면서 나에게 가장 신선하고도 기억에 남는 개념은 바로 "파울리의 배타원리"였다. 여기서 오비탈(Orbital)이라는 개념도 나오고, 그 오비탈에 전자가 어떻게 들어가는지 간략하게 배운다.

 

간단히 복기해보면 S 오비탈은 방이 하나인데, 여기에는 전자가 1개가 들어가면 1S^1 이 되고, 전자가 2개가 들어가면 1S^2가 된다. 이때 방에는 스핀수가 -1/2, 1/2인 전자가 들어가는데, 한 사람은 침대 위쪽으로 눕고, 한 사람은 침대 아래쪽으로 눕는다. (교수님이 이렇게 설명했다.)

 

그렇게 원자 오비탈의 첫 번째 껍데기는 채워진다. 그리고 2번째 껍데기는 다시 2S로 시작하게 된다. 그러면 또 똑같이 2S^1, 2S^2로 채워진다. 두 번째 껍데기는 S오비탈로 끝나지 않고 P오비탈 이란 놈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전자들은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한다. P오비탈은 우선 방이 3개 있고, P오비탈에 전자 손님이 들어온다.  그러면 3명의 손님이 각자 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4번째 손님부터 다시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가서 거꾸로 눕는다.

 

정확히 얘기하면 2P에 방 3개에 1/2, 1/2, 1/2 이란 스핀수를 가진 전자가 각각 방을 하나씩 꿰차고, 4번째 손님은 2P 1번 방에 1/2 옆에 거꾸로 누워서 -1/2로 들어간다. P에는 방이 3개인데, 1번째 방에는 전자가 2개가 들어가 있고, 2,3번째 방에는 외롭게 전자가 각각 1개씩 들어간다. 그래서 최외각에 있는 두 번째 껍데기 2개의 방에는 외롭게 -1/2 전자를 기다리는 각각 1/2 전자가 있는 셈입니다.

 

참 어렵게 설명한다. 파울리 배타성의 원리는 크게 2가지이다.

첫째, 한 방에는 스핀수가 서로 반대인 전자가 들어간다.

둘째, 먼저 방을 따로 채우고, 그다음에 빈 방에 전자가 들어간다.

 

첫 번째는 서로 배타적이지만 한 방을 쓸 수 있어 공존할 수 있다. 배타적이어야(Exclusive)만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하지만 그게 자연의 섭리라고 한다.


인생도 이와 비슷한 거 같다. 우리의 인생은 나와 같은 방향과 성향을 가진 사람끼리 만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유유상종), 실제로는 우리는 서로 방향도 다르고 성향도 다른 사람들끼리 한 방을 이루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로 배타적인 삶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자연의 원리라고 파울리가 말한다.

 

나도 아내와 여러모로 다르지만 서로 다름(배타성)이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서로 보완해주고 메꾸어준다. 회사에서도 나와 다른 직장동료가 만나서 서로의 부족함을 메꾸게 된다. 1/2 전자가 -1/2 전자보고 “왜 너는 거꾸로 누워서 자느냐? “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왜냐면 전자는 한방에 들어가려면 서로 부호가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서로 배타적이라야 서로 공유할 수 있다. C(탄소)는 이런 성질을 잘 보여준다. C는 두 번째 껍데기가 2S 2P인데 화학결합을 하려면 C는 총 4개의 손을 잡아야 한다. 여기서 탄소의 최외곽에 있는 방은 총 4개인데, 2S, 2Px 2Py 2Pz 이렇게 4개의 방에 전자가 하나씩 들어간다. 그렇게 총 4개의 손을 내밀고 다른 원자들과 공유결합을 한다. 그래서 탄소는 모든 유기 생명체에서 가장 중요한 뼈대를 이루게 된다.

 

이에 반해 산소는 바깥 전자가 총 6개이다. 4개의 방에 2개의 방은 가득 차 있고, 2개의 방에만 손님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산소는 전자를 2개를 받아야 하는 주요한 산화반응의 주인공이 된다.


 그런데 탄소가 방이 4개가 있는데, 4개의 전자가 친한 놈들끼리 한방에 두 개씩 들어가면 탄소는 4개의 손을 벌리지 않고 2개는 채워진 방, 2개는 비워진 방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탄소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생명체의 뼈대가 되지 못하고, 산소랑 똑같아진다.

 

1. 한방을 채울 때는 스핀수가 다른 전자를 받아들이는 것

2. 여러 개의 방을 채울 때는 자기들끼리 방 잡지 말고 각자 1개의 방을 차지할 것

 

파울리의 배타원리는 이렇습니다. 세상을 살 때,

1. 한 방(가족, 팀, 회사)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배타적이어야 공존할 수 있다.

2. 여러 개의 방을 채울 때는 끼리끼리 모여서 방을 잡지 말고, 각자 1개의 방을 차지해야 공유할 수 있다.

 

20살에 꽃 같은 나이에 샴푸 향기와 나른한 교수님의 음성 너머로 배운 "파울리의 배타원리"가 지금도 생각난다.  우리는 서로 배타적이면 서로 공존하지도 공유하지도 못한다는 사회과학 대신에 우리는 서로 배타적이어야 서로 공존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각자 성별, 나이, 환경 등이 다른 배타적 존재이지만, 우리는 함께 공존하고, 공유하며 살 수 있다. 갑자기 옛 생각이 나서 끄적끄적해보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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