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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소 Jun 19. 2017

[방송도감#2] KBS <인간극장>

다큐멘터리의 드라마화,세계 최초 정규 편성된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정보]


[프로그램 소개]

보통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 특별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

그 어느 장르보다도 휴먼 다큐멘터리의 강자로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2000년부터 현재까지 안정적인 시청률로 휴먼다큐멘터리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제작진]





다큐멘터리의 드라마화,
세계 최초 정규 편성된 휴먼 다큐멘터리



Q. 맥락을 보고 [괄호]안의 단어가 무슨 뜻일지 추측해보시오.
-“너 무슨 [인간극장]찍냐?”
-“너 [인간극장]에 나가야겠다.”


[‘인간 극장’이라는 확고한 정체성]


모두들 한 단어로 정의 내리긴 어렵겠지만, ‘인간 극장’이 어떤 뉘앙스의, 어떤 느낌의 말인지는 대충 감이 온다. 특히 위의 대사가 예능에 나왔다고 가정해본다면, 의미는 더욱 확실해진다. 아마 연예인(또는 개그맨)의 행동이 매우 평범하거나, 지루하거나, 감동을 짜내려 한다거나, 결과가 절망적이거나, 짠하거나 한 상황에서 저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이 상황에 <인간극장>의 웅장한 엔딩 BGM(신윤식의 '인간-비, 바람 1악장)까지 깔린다면 완벽하다.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바로 KBS의 대표 휴먼다큐멘터리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이다. 어느새 단순히 프로그램의 이름을 떠나서 ‘인간 극장’이라는 단어만으로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이 뚜렷하다. <인간극장>에는 특별한 연예인도, 압도적인 자연 풍경도 없다.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 특별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그리는 프로그램이다. ‘맨날 똑같다‘, ’감동을 짜낸다‘, 말이 많지만 은근히 감동과 재미가 섞여있어 한 번 틀면 어차피 길지도 않은 30분 그냥 눌러 앉아 끝가지 보게 된다. 실제로 2000년부터 현재까지 10%대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지켜오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어느새 <인간극장>은 국민 프로그램이 되었고, 휴먼 다큐멘터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였다.



[세계 최초로 정규 편성된 시리즈 휴먼다큐멘터리]


이 프로그램이 특별한 건 단순히 오랫동안 사랑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타방송사들에서도 꾸준히 휴먼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지만 <인간 극장>의 시청률은 넘지 못하고 있다(시청률로만 판단할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척도이니 말이다).


세계 방송 사상 최초로 정규 편성된 시리즈 휴먼 다큐멘터리인 <인간극장>은 단순히 한 개의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휴먼 다큐멘터리의 장르 문법과 속성을 새롭게 정립한 트렌드였다.

-출처 : 강용두 「TV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생산과 문화와 제작 요소에 대한 연구-KBS <인간극장>을 중심으로-」


시청률을 떠나서도 <인간극장>은 휴먼다큐멘터리의 새로운 트렌드를 구축한 프로그램이다. 먼저 휴먼 다큐멘터리를 ‘드라마화’, ‘다부작화’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매주 평일 저녁 시간대에 ‘정규 편성’ 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외국의 BBC(영국)와 NHK(일본)에서도 휴먼다큐멘터리를 시리즈로 만들기는 했다. 아주 오랜 시간 공들여서 찍은 뒤 특집 프로로 내놓았다. 그러나 휴먼 다큐멘터리의 ‘정규 편성’은 KBS의 <인간극장>이 세계 최초이다. 매주 월~금 매일같이 30분씩 방송되는 이 다큐멘터리는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일일드라마와도 같다. 심지어 2000년부터 2009년까지는 저녁 8:55에 방영되었기 때문에 마치 저녁시간 미니시리즈처럼 보게 되는 것이다. 주 시청자들의 연령을 고려해 모든 대사를 큼직한 자막으로 처리하는 덕에 우리 할머니와 외할머니도 오래도록 애청자시다.



[‘드라마틱(dramatic)’을 추구하는 휴먼 다큐멘터리]


매주 평일 8:55에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으는 이유가 있다. 그저 교양 다큐멘터리라면 이렇게까지 챙겨볼 리가 없다. 바로 ‘재미있기’ 때문이다.


일단 익스트림해야 합니다. 물리적인 생김새를 말하는 건 아니지만 예쁘든지 매력적이든지, 섹시하든지. 불쌍해도 보통 불쌍한 게 아니라 사람 환장하게 불쌍하든지, 재미있어도 보통 재미있으면 안 되고요.

-출처 : 강용두, 「TV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생산과 문화와 제작 요소에 대한 연구-KBS <인간극장>을 중심으로-」


제작진은 대놓고 소재 선정에 있어서 얼마나 ‘재미’와 ‘자극’을 추구하는지를 말한다. 가장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마지막 30초다. 전혀 심각한 상황인지 몰랐는데 갑자기 긴박하게 돌아가더니 갈등이 생기고, 뒤이어 절망의 엔딩 BGM이 흘러나온다. 다음날 이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인간극장>의 마지막 신 편집은 늘 신의 한 수다. 동 시간대의 뉴스와 드라마들 틈에서 교양 프로그램이 살아남기 위해서 이런 자극적 편집을 통한 재미와 ‘드라마틱‘함은 필수였던 것이다.      


<인간극장> 이전에도 휴먼다큐멘터리는 있었다. 하지만 한국 휴먼다큐멘터리의 변화에 대해 연구한 한 논문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휴먼 다큐멘터리인 KBS의 <인간승리>(1968~1980)는 사회의 ‘이상적 인간형’을 만들기 위한 방향성을 갖고 있었다. 이후에 나온 MBC의 <인간시대>(1985~1993) 역시도 교훈과 주제의식이 짙은 다큐멘터리였다. 과거에는 먹혔을지 몰라도, 평범하고 지루하고 모범적인 이야기에 오늘날의 시청자들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오늘날의 시청자들은 2000년대 방송계의 오락화, 상업화 바람을 한 차례 겪은 세대이다. 휴먼 다큐멘터리들도 변화를 겪었다. 재연 기법과 드라마적 요소가 가미되면서 장르 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이다. 이 시기, KBS는 <인간 극장>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어 왔던 보통 사람들의 삶을 6mm 카메라로 세심한 디테일까지도 가장 리얼하게 담아내어 휴먼 다큐멘터리의 내용적 측면에서는 충실하면서도 거기에 ‘재미와 감동’을 더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결과적으로 오락프로그램 못지않은 시청률을 올리게 되었다.



[가장 한국적인 다큐멘터리]


어찌 보면 ‘뻔’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에 시청자들이 재미와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인간극장>이 한국적 정서를 잘 건드리기 때문이다. 흔히 내로라하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외국 다큐멘터리들은 그 누구도 쉽게 가지 못하는 곳,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계, 우리가 평소에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생활을 소재로 한다. 일단 아프리카나 극지방의 오지에 가야하고, 고가의 장비로 ‘페이드-아웃’, ‘페이드-인’해가며 물 한 방울. 바람 한 줌까지도 생생하게 찍어야 하며, 밀림 속에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어느 부족 족장 정도는 돼야 주인공 감이다. 혹은 매우 유익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거나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적 정서란 무엇일까? 한 단어로는 말하기 어렵지만, 감동, 용기, 극복, 희망, 사랑, 도전, 애환, 가족 또는 이웃 간의 정 등이 있을 것이다. 분명 외국인들보다 우리가 강하게 느끼는 감정들이 있다. 그러한 감정들이 집대성되어 특화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휴먼다큐멘터리이다. 이입해서 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방영이 끝나고 나서도 주인공들의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떠돌 정도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역사상 엄청난 흥행 기록을 세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인간극장>에서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준 두 노부부를 영화로 다시 촬영하여 결국 시청자들의 기대 속에서 흥행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한국 사람은 누구인가 궁금해 한다면 인간 극장을 보라고 하고 싶다.

-<인간극장>10주년 기념 방송에 나온 박찬욱 감독의 축하 메시지-


특히나 <인간극장>이 나왔을 당시는 IMF 외환 위기가 닥치고 얼마 안 되었을 때다. 희망과 용기가 절실했던 때이다. 그러한 때에 <인간극장>에 나오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애환, 그리고 그럼에도 살아가는 그들의 의지 있는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용기를 갖게 해주었을 것이다. <인간극장>이 만든 한국의 휴먼다큐멘터리 성공 공식은 그 뒤로 나온 MBC의 <휴먼다큐멘터리 사랑>,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등으로도 이어지면서 비슷한 정서를 전달했다.



<참고자료>

KBS<인간극장> 공식 사이트

임미진, 「TV휴먼다큐멘터리의 내레이터 화법 변화에 관한 연구-<인간승리>, <인간시대>, <인간극장>을 중심으로」

박영작, 「TV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수용자 특성에 관한 연구 –KBS 2TV <인간극장> 인터넷 게시판을 중심으로-」

강용두 「TV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생산과 문화와 제작 요소에 대한 연구-KBS <인간극장>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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