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다시 여름으로

Rhye - Open

by 재영
I wanna make this play. Oh, I know you are faded.
Mm, but stay, don't close your hands.


바람은 여전히 흠칫 서늘하지만 따가울 볕이 슬슬 좋은 날. 흩날리는 벚꽃과 누런 모래, 그 사이로 K가 내뱉는 말은 어색하게 밑으로만 깔린다. '다시 연락할까 봐.' 이 짧은 문장을 트리거로, 고작해야 살짝 들뜬 정도였던 기분은 잡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과거로 날아간다. 어쩐지 올해는 얌전한 봄이었다. 그럴 리가 없지.


천 개의 해를 함께 했고, 어느덧 천 개가 넘는 달을 함께 하지 못했다. '우리는 한 몸이니까 네 생일은 내 생일이야. 그래서 나는 이제 봄이 소중하고, 너는 여름을 소중히 해야 해.' 너는 알았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여섯 해 전에 세 달 뒤로 밀렸다는 걸. 가장 좋아하는 날은 네 달 하고 삼일 뒤로 바뀌었다는 걸. 우리는 우리이기 시작한 날보다도 서로의 생일이 중요한 부류의 사람들이었고, 그러니까 네가 없던 첫 생일에도 네 문자는 함께였겠지. 위악이 답인줄 았았던 멍청한 나는 작년 여름이 돼서야 네 생일에 문자로 함께 했다.


불편했겠지. 당황스러웠겠지. 네가 다른 이와 함께한 해와 달이 벌써 천 개를 넘어가니까. 왜 갑자기 이러나 싶었겠지. 계산적이지 못한 연구원은 삼 년의 긴 수학 끝에야 간신히 답을 냈다.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도 같은 이유로 이별한다더라, 네가 만났고 집에 데려다줬고 좋아했고 신경 썼고 사랑했고 미워했고 다시 사랑한 그 사람은 과거에만 존재한다더라, 이미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었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 못 만난다더라, 따위의 문장이 추가될 때마다 괴로워지는 계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산적이지 못하니까, 아니, 사실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으니까. 삼 년 전부터 가장 좋아하는 날의 이유가 네 연락에의 유일한 핑계라는 것, 생일선물로 줬던 포토북의 끄트머리가 둥그스름해질 정도로 닳아 해질 때까지 눈에 담으며 네가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 그렇게 염치없이 이제야 네 활짝 벌린 두 팔을 갈구한다. 흩날리는 벚꽃과 누런 모래 사이로 햇살 받은 너의 자연갈색 머리칼이 반짝이며 망막을 쏘아주기를. 다시, 여름이기를.

keyword
팔로워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