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Lucia) - 어떤 날도, 어떤 말도
함께 했던 많은 계절이 봄에 눈이 녹듯 사라진다 해도,
아직 나는 너를 기억해. 세상 무엇보다 빛나던 모습을.
이렇게나 봄의 한가운데에서, 마지막 눈이 아주 조용히 사르르 녹았다.
왜 이곳에 있는지 황당할 정도로 뜬금없는, 분홍꽃의 나무. 이름을 몰랐던 그 나무 옆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어느새 너다.
"겹벚꽃이래! 어떻게 이렇게 꽃이 풍성하고 예뻐?! 색도 엄청 진해!"
유명 포털 사이트의 '꽃검색'도 없던 시절, 10분여를 핸드폰에 무시무시하게 집중하다 고개를 든 너는 그 큰 눈을 모두 경이로움으로 채우며 감탄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다른 모든 그런 순간들에 그러했듯이) 다시 한번 네게 반했으므로, 불가항력적으로 나의 투박한 두 손을 네 양 뺨에 가져다 댈 수밖에 없었다.
"앗, 안돼! 오늘은 화장 빡세게 했으니까, 볼만지기 금지야."
너는 얼굴을 살짝 뒤로 빼며 미간에 짐짓 주름을 잡고 뾰로통하게 경고를 했다. 그러면 또 엄청 사랑스러우니까 뺨에 손을 다시 대고, 더해지는 짧은 입맞춤.
"아! 좀!"
내 가슴팍을 확 밀치고 가자미눈을 하던 너는 체념한다는 듯이 먼저 다시 내게 뽀뽀를 쪽 하고 앞서 간다. 지금도 너는 올라가 있던 입꼬리를 숨겼다고 알고 있을게다.
서로 옹기종기 뭉쳐서 절대로 떨어질 리 없어 보이던 겹벚꽃잎 하나가 힘없이 나풀대며 웅덩이 위로 떨어진다.
다행히도,
꽃잎은 녹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