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질량에 휘어버린 시공간이 아예 구면球面이 되어서

한요한 - 반복

by 재영
이제 나를 놓아준다고 말이라도 했으면.
천백 번 나는 너를 다시 반복했다고.


지긋지긋한 또 한 번의 기상起牀. 꼽고 잤던 에어팟에서는 여전히 외간여자가 귀를 파준다. 뒤척이며 바스락거리는 소리 탓에 잠들지 못했던 내가, 이제 그것의 부재 탓에 불면증을 앓는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명제에 지끈지끈한 관자놀이를 누르며 구르듯 침대에서 내려온다. 바닥에 널브러진 2리터들이 페트째로, 불쾌하게 미지근한 물을 마시며 꿈을 되짚는다. 결국 나는 또 한 번 죽었다. 옥상에서 밀쳤는지, 총, 칼이었는지 기억하려 해 보지만 어느 쪽도 전부 기시감이 엄청나서 그만둔다. 오늘도 배는 고프고, 언제나처럼 배달의 민족에서 목살김치찜 하나와 햇반 두 개와 2리터들이 생수 하나와 소주 세 병을 주문하고 무한도전을 재생한다. 한 많은 잡귀처럼 끽끽 웃다 보면 무당방울 소리 같은 초인종이 울리고, 속으로 30초를 센 뒤 철문 앞 덩그러니 놓인 검은 비닐봉다리를 들인다. 다시 큭큭켁켁거리며 햇반 하나와 소주 한 병과 목살김치찜을 바닥에 되는대로 늘어놓고 무한도전을 이어 본다. 화장실을 곁들이며 네 편을 연속해서 쭉 보니, 또 배가 고파서 햇반 하나와 소주 두병을 다 식어버린 목살김치찜 옆에 두고 다시 무한도전을 본다. 헤롱헤롱해서 세 편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나니 눈도 따갑고 얼굴 근육도 땡겨서 침대에 들어가 눕는다. 흘깃 본 거울 속 모습이 면도를 할 때가 지나서 에어팟을 꼽고 웬 고운 처자가 면도해주는 영상을 튼다. 술기운과 면도 소리에 의식이 맥없이 툭 끊긴다. 열두 시간의 정적. 그리고, 지긋지긋한 또 한 번의 기상. 꼽고 잤던 에어팟에서는 여전히 외간여자가 면도를 해준다. 쌕쌕하며 곱게 쉬는 들숨날숨의 소리 탓에 잠들지 못했던 나는, 이제 그것의 부재 탓에 불면증을 앓는다. 관자놀이를 누르며 굴러서 침대에서 내려오고, 물을 마시며 꿈을 되짚으면, 나는 또 죽었다. 배가 고파 요기요에서 목살김치찜 하나와 햇반 두 개와 2리터들이 생수 하나와 소주 세병을 주문하고 런닝맨을 재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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