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NE - n.s.w.y. (london session)
Oh, there’d be no song without you.
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요. 근데 이제 음악을 곁들여서요. 어머니는 정말 어렵게 절 가지셨고,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기를 간절해하시며 모차르트 등 온갖 클래식으로 태교를 하셨대요.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동요 '섬집 아기'를 들으며 으앙 울었던 거예요. 한글도 떼기 전이었던 것 같은데 뭘 알아서 그랬을까요. 신기한 건 서른 줄에 가까운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핑 돕니다. 유치원 때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도 다 같이 부르는 교가나 애국가 같은 걸 부를 때면 가장 목소리를 크게 냈던 것 같네요. 어머니의 로망 덕분에 플룻, 바이올린, 피아노를 배웠지만 수준급에 이르기까지는 하지 못했어요. 클래식은 지금도 좋아는 하지만 아무래도 대중음악 쪽이 더 취향이고 어렸을 때도 그랬나 봅니다.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당시에 유행하던 프루나, 당나귀 같은 p2p 사이트로 신승훈, 이승환, 토이, 어떤날, 오아시스, 라디오헤드, 너바나 등등 라디오에서 알게 된 아티스트들 전집을 며칠 밤을 새우며 내려받고 행복해했어요. 저작권 개념이 없던 때라서 부끄러운 짓을 했고, 자랑스럽지 않습니다. 정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그때 불법 다운로드했던 음원들을 전부 구매하면서 나름의 속죄를 해왔어요. 잠시 딴 길로 샜네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일렉기타를 배웠습니다. 유튜브도 없던 시절 가끔 접하는 밴드들의 공연 영상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었던 까닭이죠. 태교 덕분인지 꽤 똘똘했던 학생이었고 영재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했지만 떨어졌습니다. 뜬금없이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작곡을 공부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안정적인 미래를 원하셨던 탓에 '서울대에 합격하면 음악을 하든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겠다!'라고 조건을 내거셨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죽을 듯이 공부했습니다. 외로운 독서실에서의 귀갓길을 함께 해줬던 신해철 씨의 고스트 스테이션이 그립네요. 베이스 기타의 매력에 빠져버린 전 생일 선물로 받은 데임사社의 제일 저가 모델 베이스로 틈틈이 독학을 했습니다. 3년간의 시간은 결실은 맺었고 서울대 공대에 합격한 전 1학년 때부터 밴드 동아리에 가입했죠. 그 후에도 학교에 있는 음악 관련 동아리란 동아리는 모두 가입해서 열심히 배우고 활동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대학생 치고는 엄청나게 자주 공연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조금씩 이름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겼고, 덕분에 꽤 실력 있는 사람들과 밴드를 결성해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축제에서 몇천 명의 사람들이 우리 밴드의 자작곡을 함께 불러줄 때의 전율이란. 자신감을 얻고 홍대로 진출했고, 보기 좋게 실패했습니다. 부모님이 결사반대하신 이유를 몸소 느꼈죠.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20대의 버킷리스트였던 '초록창에 치면 나오는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그즈음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남이 만든 노래 말고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돌이켜보면 수많은 공연들 중에서도 자작곡들을 올렸던 무대가 조금 더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아쉽게 음악에서 진로를 변경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아니 전보다 더욱 사랑해 마지않는 음악입니다. 이건 비밀인데, 그건 제가 겪은 아주 특별한 경험들 때문이에요. 애인과 노래방을 가기로 했는데, 유흥시설이 전혀 없는 아주 클-린한 동네였어서 거의 한 시간을 찾아 헤맸던 적이 있어요. 겨우겨우 찾은 곳은 정말 최악의 음향이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면 목소리가 한 세 개쯤으로 들리는 지경이었죠. 성시경 씨의 '두 사람'을 진지하게 부르고 있었는데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마이크를 놓아버렸어요. 대신 육성으로 불렀습니다. 애인의 손을 꼭 잡고요. 맞잡은 손을 타고 그 친구가 전율하는 것이 느껴졌어요. 공연을 백 번 가깝게 했으니까, 노래를 부를 때 떨리거나 하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제 목소리도 달달거리더군요. 그렇게 별로인 노래를 마치고 애인의 표정을 보니, 아무리 뽀뽀를 하고 달콤한 말을 해도 온전히 전해지지 못하는 것 같던 그 친구를 생각하는 제 마음이 아주 오롯이 전해졌음을 알 수 있었어요. 최근에 한 놀라운 경험이 하나 더 있습니다. 힘든 유격 훈련 두 번째 날 밤이었어요. 얼어 죽을 것 같은 추위 속에 깔개 한 장 깐 텐트 안에서 우리 부대 사람들은 모두 녹초였습니다. 장기자랑에서 휴가를 딸 요량으로 가져온 기타를 가리키며, 한 간부님이 "재영아, 노래 한 곡 해봐!"라고 하셨죠. 전우들을 위로하고 싶었고 수고했다는 마음을 담아 조용히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관심도 없었던 전우들이 차차 한 명 한 명 따라 부르게 되었고, 세 번째 곡부터는 전 부대원이 한 목소리로 열창했습니다. 우리 50명은 낮에 있던 고된 훈련들, 사소한 다툼들을 그렇게 깨끗이 잊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연주를 한 제게도, 따라 불러준 전우들에게도 정말 최고의 힐링이었어요. 이러니 제가 음악을 사랑하지 않고 배기겠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이렇게 쭉 적고 나니 음악은 역시 사람이 묻어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절절한 이별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고, 달달한 사랑 노래를 들으며 새삼 설레고, 음악을 공유하면서 사이가 한걸음 가까워지고. 아주 좋은 음악을 혼자 아무리 즐겨도 함께 나누는 기쁨보다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게 제가 이 계정으로 음악을 나누는 큰 이유입니다. 그렇게 저는 음악을 사랑함을 통해서 다시 한번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