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희 - 별빛 같던 우리 낭만들도
흩날릴 일만 남았을걸.
가까스로 삼켜버린 말과 불안함에 떨리던 바다 위에서 별빛 같던 우리 낭만들도.
가끔, 애초부터 그냥 거기 있어온 듯한 물건 하나가 갑작스레 생경해지는 밤이 있다. 오늘 차례는 누레진 냉동고 문에 붙어 있는 시커먼 사진이다. 그와 홍대 뒷골목 어드메를 어슬렁하다 만난 소규모 플리마켓의 한 가대에서 혼자만 새까만 녀석이었다. 가운데엔 다이아 같은 것이 있었는데 들여보니 별빛 받은 작고 하얀 배였다. 반짝이로 후작업을 한 듯한 밤하늘과, 흑과 청이 조화롭게 일렁이며 파도치는 바다가 딱 반반이었고, 정중앙에 홀로 그것이었다.
속으로 우리네, 했는데 그가 소리 내어 우리네, 했다. 인화 맡긴 사진을 찾아가듯 당연하게 집어 들고 걸음을 옮기며 다른 이야기를 했다. 술을 좀 마셨고, 새벽에 목이 말라 깨서 냉장고를 열다가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붙였다. 어스름 속 배는 유아독존!이라 외치며 고고孤高했고, 그 순간부터 그건 그냥 당연하게 보금자리의 일부였다.
어제처럼 양치를 했고, 어제처럼 자기 전에 물을 마시려다, 갑자기 낯선 사진 속의 배가 오늘은 막막하게 외로워 뵌다. 잠시 쳐다보다가 냉장고를 열고 생수를 꺼내 마셨다. 그러고 다시 봤는데, 더 그랬다. 잠깐 또 보다가 사진을 슬쩍 기울였다. 하얀 돛단배는 이제, 별바다로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