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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영 May 31. 2021

벌레보다 강력한!

10cm - 방에 모기가 있어

예를 들게, 그럼 봐봐.
방에 모기가 있어, 근데 잡을 수 없어.
창문도 열 수 없다면, Do You Think Of Me?


아영은 감정적인 저변만큼이나 표정이 풍부한 사람이다. 바닥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아무런 굴곡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아주 맑고 깨끗한 호수의 수면처럼, 느끼고 있는 감정이 얼굴에 오롯이 투영되는. 특히나 놀랐을 때의 표정은, '놀라다'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은 1. 뜻밖의 일이나 무서움에 가슴이 두근거리다. 2. 뛰어나거나 신기한 것을 보고 매우 감동하다. 3. 어처구니가 없거나 기가 막히다. 등의 뜻풀이들보다도 더욱 효과적으로 그 감정을 나타낼 정도다. 어느 정도냐면, 과 동기들이 '아영'실색, 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지금, 아영은 그 '아영'실색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무슨 사연인고 하니, 과 동기라는 것 외에는 아영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파장도 끼친 적이 없는 주용이 아영에게 정말로 뜬금없는 말을 한 탓이다. 평소에 말을 주고받는 사이였더라도 놀랄만한 말을, 이 두 사람이 서로의 인생에서 하는 첫 대화의 시작으로 버젓이 뱉었기 때문이다.


"니 방 바퀴벌레 잡아주고 싶어."


주용은 아영이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 가장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이다. 아니, 아마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그럴 것이다. 동기들과 밥 약속을 잡은 적도 없고 몰려다니지도 않아서 음식을 먹는 것을 본 적도 없고, 강의 중에 커피를 마실 때도 입술을 붙이고 먹어서 동기들끼리 진지하게 주용의 섭식에 관한 토론을 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아예 사회성이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닌 듯했다. 옷차림도 멀끔하고, 몸도 탄탄해 보이고 얼굴도 호감형에 가깝다. 과 축구 동아리에서 활동도 하는데, 아영은 여자 동기들과 응원을 갔다가 경기장을 뛰어다니면서도 입을 꾹 닫고 호흡하는 주용에게 살짝 질려버린 적도 있었지만 어쨌든 음침한 분위기의 사람은 아니다. 국문학도답게 동기들은 당연히 '주용'하다, 라는 단어도 만들어 사용했다.


그런 주용이 (적어도 아영에게는) 처음으로 입을 벌리고 한 행위가 아영의 방 바퀴벌레를 잡고 싶다고 말한 것이니, 아영의 입은 떡 벌어져 땅에 닿기 직전이다. 그 와중에도 표정 변화만큼 재빠른 아영의 눈동자는 주용의 치열을 스캔했고, 언젠가 동기들끼리 주용이 '주용'한 이유에 대해서 그럴듯하게 추론해봤던 교정기라던가 심한 덧니라던가 하는 결점은 보이지 않아서 아영은 뭔가 약간 실망스럽다. 

 

"너 뭐야? 세스코야?"


학교 축제 기간에 국문과는 주점을 열었고 아영은 부과대로서 주방에서 열심히 김치전을 부치고 소주를 나르고 테이블에서 시시덕거리는 다른 동기들을 원망의 눈으로 쳐다보고 마지막 날인 오늘 밤도 취한 동기들을 챙기고 마지막 뒷정리를 한 참이다. 주용은 묵묵히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도왔는데, 워낙 있는 듯 없는 듯이라 주용이 한 일을 누가 발견하면 "어, 이거 누가 해놨어?", 할 정도였다. 네다섯 명 남은 이 '뒷정리 멤버'에 주용이 포함되고 나서야 아영은 주용을 발견했다. 어쨌든 이 바퀴벌레 이야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생각을 해보면 부르스타를 정리하다 그 밑에 뒤집어져 있는 바퀴벌레를 본 아영이 온몸으로 '놀라다'를 표현하며 급기야는 울음을 터트렸고, 기껏 벌레 한 마리에 뭘 울기까지 하냐, 라는 과대의 구박에 우리 집에 바퀴벌레 있으면 나 들어가지도 못한단 말이야! 하며 소리를 빽 질렀던 것을 주용이 보고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뿐이다.


아영의 대답이자 물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인지, 아니면 스스로도 자신의 입이 벌어진 '오류'가 놀라워서인지 주용은 눈동자를 어찌할 바 몰라한다. 그러다가, 잠깐 블루스크린이 떴던 컴퓨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재부팅을 하곤 태연하게 바탕화면을 띄우고 있는 것처럼, 다시 입을 닫는다. 아영은 '아무 말이라도 해!'라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고, 주용은 손을 들더니 하이파이브를 요구하는 듯 오른 손바닥을 아영에게 보인다. 아영이 손바닥을 맞대라는 건가,라고 생각이 마칠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주용은 아영의 왼 어깨에 손바닥을 올리더니 굉장히 어색한 박자로 탁, 탁, 두 번 두드린다. 손바닥을 계속 올려놔야 하는지 아니면 거둬야 하는지를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 주용의 얼굴에 스쳐가고, 아영마저 그 손바닥이 민망해질 때쯤 또 한 번 자신의 '오류'에 어찌할 바 몰라하며 급하게 손을 거두고 휙 뒤돌아서 걸어간다.


아영이 방금 일어난 일에 아무런 현실감을 갖지 못해서 한참 서있다가 앞니에 날파리 한 마리가 스치고 나서야 내려가 있던 턱을 올린다. 그리고는 오늘따라 낮게 뜬 차가는 달에 검은 구름이 살짝 걸려있다가 바퀴벌레가 사사삭 숨듯 빠르게 물러나는 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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