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 - 그늘은 그림자로
오, 사랑은 상처만 남기고, 이제 우리 다시 나란히 걸을 순 없겠지.
기우는 태양 같은 사소한 것까지 원망스러워지는 날은 유난히 그림자가 길다. 무정한 햇살은 필요 이상으로 자연스럽고도 당연해서, 가려본답시고 애쓰는 꼬락서니마저 회색 필름에 그대로 찍어내 버린다. 깔깔깔깔하는 아이들이 괜스레 따가우면, 그제야 나는 지금 궤도를 이탈해있구나, 깨닫고 황급히 큰 그늘로 몸을 피하는 꼴이었다. 성게는 스스로도 바닥에 몸을 뉘지 못하는데 넌 옆에서 어찌 그리 곤하니. 이 바보 멍청이 똥개 해삼 말미잘. 네 입은 자면서도 달빛 한줄기 새지 못할 만큼 굳건하다. 욕심은 두 줄짜리 대화라도 훗날의 회고에 덧대고자 하지만 양심은 쓸데없이 고지식하므로 나도 따라 잠식할 수밖에. '다가오는 다음날부턴 단 하나의 준비조차 없는데'. 청승은 가사따라 순식간에 현실이 되고 비게 될 자리들은 벌써부터 진공이라 정신머리를 이리저리 빨아들인다. 모레에는 오랜만에 약속이 있으니까, 내일은 제발 눈물이 정도껏이었으면 하고, 오늘 이 부질없는 기도로 잠을 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