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바로 찾아온 슬럼프
문학 소년이라고 하기에는
입학했을 당시, 이미 2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소년이라고 칭하기에는 양심의 가책을 어느 정도 느끼기 때문에 '문학청년'이 되었다고 표현하려고 한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 문학이라는 글을 읽고 쓰면서 배우기 시작한 25세의 나는 이미 문학청년이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배우기를 갈망했던 출발점이라는 것과 타인의 시선을 어느 정도 신경을 쓴 정황까지 바라본다면 전공생이 된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문예학도, 문학청년이라고 표현하는 것 또한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이 속물처럼 보일 수 있고, 성공하지 못한 누군가에게는 오만하고 거만해 보일 수 있겠지만 세상의 시선은, 그러니까 주변 지인도 어떠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에 이러한 표현이 불편하더라도 이 문장을 빌어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그렇게 나는 꿈에 그리던 곳에서, 꿈에 그리던 옷을 입고 등교를 했다. 입학식 행사의 일정이기는 하지만, 레드 카펫도 밟았다. 레드 카펫을 밟으며, 성공해서 레드 카펫을 또다시 밟는 미래의 내 모습도 상상했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행복하고 가슴 한구석이 가렵다.
입학과 동시에 온 슬럼프
합격한 순간부터 글과 독서를 멀리하고 너무 놀기만 했던 나는 입학과 동시에 창작 수업에서 슬럼프와 조우했다. 애초에 단편 소설을 써본 적은 없었고 콩트라는 형식의 더욱 짧은 글만 썼던 터라 어쩌면 어려운 것이 당연할 수도 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구상하는 능력이 전보다 많이 떨어졌음을 느꼈다.
그렇다고 마감 기간을 지키지 않을 수도, 글을 쓰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견뎌내는 마음으로, 이겨내는 마음으로 소설을 써서 제출했지만 뭔가 입학 전에 상상했던 것만큼 즐겁거나 잘 풀리지 않았다.
분명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당시 나의 수준과 부합하지 않거니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당시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무슨 시작하자마자 슬럼프가 오고 앉았냐."
이 와중에 즐거운 단막극
다른 과 수업인 희곡 수업을 들었는데, 기말고사 때 팀을 이루어서 단막극 공연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팀에서 배우가 되었다. 이 또한 잘할 줄 알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원래 흥미가 있는 분야면 무조건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나는 장점이라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당연하다고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연기를 배운 적이 없던 나는 딱딱한 로봇 같았다. 하지만 다른 과 동료 학우들이 섬세하게 교정해 주며 가르쳐준 덕분에 조금씩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꼭 연기를 전공하지 않아도, 연기자가 꿈이 아니더라도 나는 누군가가 배워보고 싶다 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해 주고 싶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떠한 행위를 하는 것과, 즐거움을 전달한다는 것이 좋은 경험과 추억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반수와 재입학, 극복이라는 '세 갈래 길'
이렇게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보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글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제 시작이며, 이야기를 만들고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친구들이 사회로 나가기 시작할 때, 즐겁게 놀 때,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때 기존의 직업을 포기하고 시간을 쪼개 넣어 활용했기 때문에 더욱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두려움을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피할 수 없는 단막극 공연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힘들었지만 정말 즐거웠다.
그 타이밍이 공교롭게도 내가 글 쓰는 일에 슬럼프를 맞이했을 순간이었기에, '세 갈래 길'을 고민을 하게 되었다.
하나는 선택을 잘못 한 것 같다는 생각으로 당시 상황을 핑계 삼는 것이었다. 1지망 학교가 아닌 2지망 학교를 목표로 삼고 나아가 소수 인원인 환경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핑계 같았지만, 당시의 나는 매번 그런 것처럼 판단을 잘못 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전공과 꿈을 바꾸는 방법이었다. 연기자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전달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고, 매력을 느껴버렸기 때문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하지만 두려움과 아쉬움이 공존했다.
태어나서 무언가를 직접 갈망하고 이뤄내기 위한 노력을 이만큼 해본 적이 없었으며, 스물일곱의 나이에 또다시 직업을 바꾸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하는 것도 두려웠다.
그리고 실패할 경우를 생각하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퇴보하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
마지막 하나는 극복하는 것이었다. 결국 슬럼프만 극복하면 상관없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무엇을 가장 원하고 있는지, 내가 마주한 세 갈래 길은 애초에 슬럼프가 아니라면 존재하지 않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고민 끝에 두려움을 이겨내며 '극복'이라는 방향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