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심한 광대 May 09. 2023

'진짜' 내가 누군지 보여줘야겠다

너무 안일했던 시간들, 그리고 약간 미치기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영상을 끄고 난 다음 영상 속에서 강의를 진행하던 사람과 나를 비교 해보았다. 누군가는 비교할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라고 비난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예체능 입시 준비생이 명문대 의대 합격생과 비교를 하다니.


  누가 더 어려운 종목에 도전하는가와 누가 더 열악한 상황에서 도전을 하냐는 관점에서 최대한 벗어나서 비교하려고 노력했다.

  환경과 관심 분야와 같은 정황은 누구나 다르기 때문에 그러한 비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우 본질적인 부분을 찾아가며 비교를 했다.


  둘 다 안구는 두 개고 코는 하나였다. 뇌와 심장, 간, 위가 하나이고 귀와 팔과 다리 또한 두 개씩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신체적 결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몰입하고 열정을 가졌으며 끈기가 있는지, 즉 얼마나 미친 듯이 노력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나도 합격을 못 하면 안 되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일한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도전이라는 아름다운 가면을 쓴 연기자가 아니었던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저 사람도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계산 없이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 순간이 실기시험이 한 달 정도 남은 순간이었다.


  그래도 내가 누군지 보여줘야 한다


  한 달 정도 남은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거니와 현실은 내 개인의 사정이 시험 일정을 변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인식하지 않는 것보다 그저 당장 시작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영상을 끄고 바로 어플을 삭제하고 절제와 몰입, 그리고 끈기에 집중을 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변형되거나 바뀌지 않으니, 내가 그 시간을 알차게 쓰거나 이겨내는 것만이 방법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고 다짐했다. 이번에 합격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3개월 더 고생해야 한다는 것과, 그도 아니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경제적 자유를 얻고 다시 도전하는 나의 모습을.


  지난날의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 애석하기도 한 나의 모습은,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약간 미친 사람처럼


  일전에도 마음을 독하게 먹었을 때, 나는 글이 써지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았다.

  과제 마감의 문제도 있었지만, 애초에 문예창작 입시를 준비할 때 나는 과제를 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지도 않았다. 


  물론 힘들고 지치면 죄송하다는 한마디로 무마할 수 있었겠지만, 또한 어느 정도 포기를 하고 과제를 제출하는 것에 의미를 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어느 정도의 포기에 기반하야 과제 제출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바보 같은 나를 발견한 이후에 나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약하고 안일하고 게으른 내 내면과 합의하지 않았다.

  약간 단순하고 무식한 방식으로 다가갔다. 힘들어도 더 참고 견디며, 물리적인 시간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그 물리적인 시간을 억지로라도 늘리는 방식으로.


  약간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뿌듯했던 순간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잠시 쪽잠을 잘 수 있었을 때, 눈을 감은 적이 있다.

  첫 문장이 중요하다는 말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입시생의 마음은 합격에 대한 갈망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었던 것 같다.

  그 갈망은 무의식이 되었던가. 나는 잠꼬대로 첫 문장을 중얼거렸다가 그 중얼거림에 스스로 잠에서 깨어났다. 마치 자신의 코골이를 듣고 깨는 것처럼.


  잠에서 깨면서, 나는 약간 미친 것 같은 내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원했던 결과, 그리고 새로운 시작


  결국 나는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어릴 적 나는 공부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첫 대학 또한 그저 남들이 다 가기 때문에 입학하여 즐겁게 놀다가 졸업을 했었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보다 더 뜻깊은 점은 내가 무언가를 위해 노력해서 목표를 이루어 낸 것이었다. 살면서 그만큼 노력을 하고 그만큼 무언가를 갈망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합격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후기와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눈물을 잃어버린 상태였고, 너무 놀란 나머지 핸드폰을 벽에 집어 던지긴 했다.


  목표를 이룬 행복감과, 이제 또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렘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간은 정말 행복한 나날들을 선물 받은 것처럼 즐겁게 보냈다.


  

이전 08화 내가 누군지 보여주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