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안일했던 시간들, 그리고 약간 미치기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영상을 끄고 난 다음 영상 속에서 강의를 진행하던 사람과 나를 비교 해보았다. 누군가는 비교할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라고 비난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예체능 입시 준비생이 명문대 의대 합격생과 비교를 하다니.
누가 더 어려운 종목에 도전하는가와 누가 더 열악한 상황에서 도전을 하냐는 관점에서 최대한 벗어나서 비교하려고 노력했다.
환경과 관심 분야와 같은 정황은 누구나 다르기 때문에 그러한 비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우 본질적인 부분을 찾아가며 비교를 했다.
둘 다 안구는 두 개고 코는 하나였다. 뇌와 심장, 간, 위가 하나이고 귀와 팔과 다리 또한 두 개씩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신체적 결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몰입하고 열정을 가졌으며 끈기가 있는지, 즉 얼마나 미친 듯이 노력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나도 합격을 못 하면 안 되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일한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도전이라는 아름다운 가면을 쓴 연기자가 아니었던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저 사람도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계산 없이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 순간이 실기시험이 한 달 정도 남은 순간이었다.
그래도 내가 누군지 보여줘야 한다
한 달 정도 남은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거니와 현실은 내 개인의 사정이 시험 일정을 변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인식하지 않는 것보다 그저 당장 시작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영상을 끄고 바로 어플을 삭제하고 절제와 몰입, 그리고 끈기에 집중을 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변형되거나 바뀌지 않으니, 내가 그 시간을 알차게 쓰거나 이겨내는 것만이 방법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고 다짐했다. 이번에 합격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3개월 더 고생해야 한다는 것과, 그도 아니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경제적 자유를 얻고 다시 도전하는 나의 모습을.
지난날의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 애석하기도 한 나의 모습은,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약간 미친 사람처럼
일전에도 마음을 독하게 먹었을 때, 나는 글이 써지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았다.
과제 마감의 문제도 있었지만, 애초에 문예창작 입시를 준비할 때 나는 과제를 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지도 않았다.
물론 힘들고 지치면 죄송하다는 한마디로 무마할 수 있었겠지만, 또한 어느 정도 포기를 하고 과제를 제출하는 것에 의미를 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어느 정도의 포기에 기반하야 과제 제출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바보 같은 나를 발견한 이후에 나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약하고 안일하고 게으른 내 내면과 합의하지 않았다.
약간 단순하고 무식한 방식으로 다가갔다. 힘들어도 더 참고 견디며, 물리적인 시간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그 물리적인 시간을 억지로라도 늘리는 방식으로.
약간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뿌듯했던 순간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잠시 쪽잠을 잘 수 있었을 때, 눈을 감은 적이 있다.
첫 문장이 중요하다는 말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입시생의 마음은 합격에 대한 갈망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었던 것 같다.
그 갈망은 무의식이 되었던가. 나는 잠꼬대로 첫 문장을 중얼거렸다가 그 중얼거림에 스스로 잠에서 깨어났다. 마치 자신의 코골이를 듣고 깨는 것처럼.
잠에서 깨면서, 나는 약간 미친 것 같은 내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원했던 결과, 그리고 새로운 시작
결국 나는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어릴 적 나는 공부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첫 대학 또한 그저 남들이 다 가기 때문에 입학하여 즐겁게 놀다가 졸업을 했었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보다 더 뜻깊은 점은 내가 무언가를 위해 노력해서 목표를 이루어 낸 것이었다. 살면서 그만큼 노력을 하고 그만큼 무언가를 갈망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합격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후기와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눈물을 잃어버린 상태였고, 너무 놀란 나머지 핸드폰을 벽에 집어 던지긴 했다.
목표를 이룬 행복감과, 이제 또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렘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간은 정말 행복한 나날들을 선물 받은 것처럼 즐겁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