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것을 즐기기로 했다
극복이라는 방향을 선택했다
사실 극복이 아니라 안전한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수 있다. 어찌 되었든 당시의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소설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저 전공이 아닌 정황에 비해 반응이 좋았던 것 가지고 내가 갈망했던 꿈을 바꿔버리는 것은 어쩌면 슬럼프가 무서워 도망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소설을 계속 쓰면서 기회를 만났을 때 연기도 도전하는 것이 이상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세 갈래 길에서 '극복'이라는 길을 선택했다.
초심으로
주관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이 있다. 소설을 잘 쓰기 위해서는, 그 무엇이든 잘해 보이는 것보다 자체를 즐기는 것이 결과가 더 좋다는 것이다.
어쩌면 슬럼프가 온 것은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왔던 것 같다.
잘 써진 소설, 잘 쓰는 나의 모습, 긍정적인 평가 등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 것까지 포함해서 소설이라는 행위가 수단이 되었기 때문에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고 결과도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잘 쓰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 보다 즐겁게 쓰는 것에 더 집중했기 때문에 문학청년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잊고 있던 마음가짐, 내 자신을 천재라고 믿었던 순간들도 떠올렸다.
그 떠올림은 비로소 초심이 되었다.
잘해 보이는 것과 즐기는 것
문학청년이 되기 전에, 그러니까 입시 준비생일 때 학교마다 선호하는 성격, 혹은 정서가 있다는 소문은 첫 문장이 중요하다는 것만큼 중요한 소문이었다.
그것은 잘해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시험장 갔을 때마다 나만의 방식으로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과정을 넘었기에 문학청년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나는 그 관점을 어느 정도는 넘지 못하고 있던 꼴이 되어 있었다.
어떠한 스타일을 맞추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문장을 묘사할 때 힘을 많이 주는 방식 같은 것들을 통해 나는 잘 쓰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틀린 관점이라던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이 아예 없는 사람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것을 먼저 바라보지 못한 것이 중요한 것이고, 그래서 나는 슬럼프에 빠졌던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행위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욕망의 방향을 바꿨다.
즐기다가 찾은 정체성, 광대
광대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보통은 몸으로 표현하며 즐기는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언어로 예술 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광대라는 가르침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 표현과 가르침이 좋았고, 그 표현이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재미있게 놀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본질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잘 쓰는 것보다 재미있게 썼다.
잘 쓴 소설로 보이는 것보다 재미있는 소설로 보이게 썼다. 그리고 그렇게 쓰는 행위가 더 즐거웠다. 그래서 나는 더 만족할 수 있었고, 재미있게 봐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결국 우리는 광대라는 가르침을 받은 것이 더 나중에 일어난 일로 기억하지만, 나는 즐겁게 쓰고 즐기는 것이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글을 썼다.
그렇게 나는 광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