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과 이행, 울타리 밖에서
문예학도가 아니라 아마추어
더 이상 문예학도라고 칭할 수 없는 순간이 왔다. 시간이 흘러 나는 학점을 다 채우게 되었고, 졸업장을 받았다.
그렇게 원하던 졸업장이지만,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3년의 과정을 거치고, 심화 과정에 합격하면 4학년이 되는 학교였다. 당연히 4학년으로 진급이 가능할 줄 알았던 나는 그다지 노력을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어리석었지만, 당시의 나는 4학년이 못 될 거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했다.
문예창작을 전공하는 동안 주말을 완전히 포기하는 수준으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다가 방학이 시작되면 요리사의 삶을 살았다.
최대한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는, 그러니까 등록금과 자취방 전세금 외의 모든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그 열정을 후회한다. 지원을 조금 받고, 조금 더 열심히 살았다면 분명 좋은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었음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현실과 게으름과 두려움에 타협했기 때문이다.
졸업장을 받고 자취방을 정리하고 올라오니, 나는 문예학도가 아니라 아마추어 습작생의 신분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문예학도 시절이 나에게 안정적인 울타리였다는 사실을 나는 졸업을 하고 아마추어가 돼서야 느끼게 되었다.
울타리 밖으로 나갈 준비
문예학도 시절의 나는 빨리 사회로 다시 돌아가 돈을 벌면서 소설 쓰는 삶을 원했다. 그래서 1학년 때부터 졸업 후 무슨 일을 하면서 글을 쓰고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 고민은 항상 나의 심리를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들었고, 많은 고민 끝에 나는 그 고민의 해답을 찾는 대신 흐르는 시간에 맡기기로 하고 고민을 중단했다.
고민을 중단하니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생겼고 즐거운 순간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당장의 삶을 살아가기는 했지만,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아니다. 하고 싶지 않았고, 방법도 몰랐으며, 준비할 시간이 1년은 더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막상 1년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저 학벌과 자신감이 있으면 상관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경제활동을 위해 글쓰기와 관련된 직무 채용 공고에 이력서를 돌렸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한 수준이었고, 그제서야 나는 울타리 밖으로 나갈 준비가 전혀 하지 않고 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울타리 밖은 나의 학벌과 글쓰기 수준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만큼의 실력과 수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은
하지만 왠지 취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프리랜서 요리사 생활을 병행하면서 취업 준비를 병행했다.
누군가는 요리사 생활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면 상관이 없지 않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하루 12시간 정도의 근무 시간을 소화하면서 병행하는 것 보다 9시간 정도의 근무 시간과 안정적인 휴무를 가지는 것이 작품 활동에 더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에, 왠지 회사에 취업을 해야 하고 글과 관련된 직무를 직업으로 삼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었다.
다행히 문예학도 시절에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대외활동을 한 적이 있기는 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에 뭐라도 한 줄 더 적을 것이 있었고, 구직 활동 끝에 잡지 에디터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랜 기간 근무를 하지 못했고, 프리랜서 요리사 생활과 취업 준비를 반복하는 방황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2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단 한 편의 소설도 써본 적이 없었다.
당장 이행하지는 않더라도 포기는 하지 말자
2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소설을 쓰지 못한 것은 나의 게으름으로 인한 것도 분명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인정한다.
"이번 일만 해결하고 글을 써도 늦지 않아."
나는 그렇게 마음속에 되뇌이며 소설 쓰기를 미뤘다.
'이번 일'이라는 것은 직업의 선택과 직업윤리, 원하지 않는 업무와 삶에 대한 고민에서 허우적거림이라는 슬럼프였다. 지난 1년 정도의 슬럼프는 소설 자체에 대한 슬럼프라면 이번에는 소설을 옆에 두고 살아가는 삶에 대한 슬럼프였다.
2년 정도의 시간 동안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당장 소설 쓰기를 이행하지는 못하더라도 절대로 소설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