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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에센티아 Aug 30. 2020

러브레터_오글거려도 괜찮아

결혼기념일 남편에게쓰는편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보!

이렇게 결혼 5주년을 하루 앞두게 되다니 정말이지 꿈만 같네요. 믿겨지지가 않는 이런 날이 우리네 인생에는 살다보면 오는 군요.

남녀간의 애로스적 사랑은 3년 정도 지나면 그 시효가 다한다고들 하죠. 같은 상대끼리는 생화학적으로 서로를 자극하는 호르몬이 더이상은 분비 되지 않기에, 뜨겁고 열정적인 감정은 지속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일평생 로맨스를 꿈꾸며 살아온 우리 인간은 사랑때문에 때론 목숨도 받치고 인생도 걸고 하는데, 그런 사랑이 고작 3년 정도로 끝나는 호르몬의 마법에 불과하다니! 정말이지 청천벽력같은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이네요.

하지만 뇌과학자들은 또 다른 희망적인 사실도 발견했다고 해요. 일평생 한 배우자와 충실하게 가정을 꾸리며 살아온 남녀의 뇌를 엑스레이로 찍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거예요. 열정적 사랑에 빠진 뇌는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솟구쳐서 흥분되고 쾌락을 느끼는 중추를 활성화시킨다고 해요. 이럴때 사람은 인식과 자각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불안정하고 약간은 미쳐있는(?) 상태라는 거예요.

한편, 금슬이 좋은 오래된 노부부의 뇌는 지속적으로 세로토닌이 안정적으로 분비되어, 평온한 심리상태를 느끼며 판단력도 최상의 상태를 보인데요.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볼때보다, 서로를 바라볼때 이런 최상의 상태를 더욱 경험하게 된다고 하네요.

강하고 짧은 욕정적 사랑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정신 못차리게 하며 지배하지만,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주는 진정 숙성된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뇌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준다는 거지요.

이 사실은 자칫하면 사랑에 대한 절망으로 치달을 뻔 했던 내 마음에 따뜻한 감동을 주었답니다. 바로 이것이 어쩌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정신적 차원이 아닌가 싶어 나는 행복했습니다.

우리의 뇌의 상태가 바로 마음의 상태인 거겠지요. 우리 결혼 생활을 통해 나는 그런 뇌의 상태를 원합니다.

육체적이나 물질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이 아니라, 바로 정신적, 영적으로 이룰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상태에 도달해보고 싶습니다.

예수나 석가모니가 아닌 우리 인간은, 혼자서는 영원히 그 정점의 상태에 도달 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서로 신뢰와 사랑을 깊이 쌓은 부부의 뇌는, 분명 그런 최상의 정신상태로 서로를 끌어올리며 서로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될 것임을 믿어요.

나는 오래전부터 3년이라는 사랑 호르몬의 유효기간에 대해 알고, 사랑에 대한 깊은 회의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 어떤 사랑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이란 것은 불안정하고 부질없는 것이지만, 그냥 인간 생존에 필요한 것이려니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사랑과 삶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함께 만들어온 우리의 4년간의 삶과 세계는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당신 덕분에 나는 성장하고, 진정한 나를 만나고, 내 삶에 대한 새로운 꿈과 의미를 찾은 것 같습니다.

여지껏 우리 사이에 흐른 시간이 열병같은 호르몬의 샘을 어느덧 말려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분명 처음의 사랑보다 진화했고, 이 생에서는 처음 겪어보는 레벨인지라 잘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처음으로 도달해본 사랑의 여정을 우리는 함께 항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누구와도 나누어보지 못한 우리 둘만의 정신세계를 향유하면서 오직 우리 둘만이 엑세스 할 수 있는 비밀의 클라우드 속에서 깊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이 관계는 너무도 특별하고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