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 관성과 칩거 라이프스타일
인간은 최악의 삶에도 익숙해질 수 있다. 특히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 톨스토이
요즘 나는 살맛 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일상을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가득 채우며 지내다 보니, 하루가 너무도 짧다.
코로나 19가 결국은 내 인생의 선물이 되었다. 일평생 이렇게 집콕을 하며 지낸 한 해는 정말이지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천재적 적응의 동물인 인류의 일원답게, 나 역시 드디어 적응을 해낸 것 같다.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집콕에 이제 나는 완전 적응 완료했다고!
나는 원체 싸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역마살이 끼었다'라는 표현에 어울리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여행도 좋아했고, 밖에 나가 사람 만나는 것도 즐기고, 목적이 없어도 정처 없이 나가 걷는 것조차 생활이었다. 주말이면 집에 붙어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도 나와 이런 성향이 꼭 맞는 남편을 만난 덕분에, 결혼을 하고도 우리는 항상 나다녔다. 물론 그런 취향이 다른 남자와는 애초에 만나지도 않았을 테니, 당연한 이치였다. 나돌아 다니는 걸 좋아하는 두 사람이 만나 일으키는 시너지는 더한층 높은 차원의 '아웃도어 라이프'를 탄생시켰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당연히 집에 붙어있던 적이 없었고, 심지어는 출산 후에도 아들의 신생아 시절을 제외하곤 끊임없이 어딘가로 콧바람을 쐬러 나가려 했다.
아들이 어린 시절에는 애를 밖에 데리고 나간다는 것이 참으로 번거로웠다.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감하겠지만, 아주 사소한 야외 활동을 하려 해도 지참해야 할 짐이 산더미다. 아이가 둘 정도 됐다면 아무리 우리라도 아싸리 포기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깥 활동에 대한 꺼질 줄 모르는 강렬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기를 쓰고 모든 용품을 챙겨 아이와 함께 나갔다. 산, 강, 바다, 공원, 도심, 국내, 해외 가리지 않고 어디든지.
단적인 예로 2017년에는 4살 된 아들과 해외여행만 4번을 했고, 이듬해에는 말레이시아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오기도 했으니, 이 정도면 말 다 했다 할 것이다. 그토록 나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여태껏 대단한 여행 블로거가 되지 못한 것도 따지고 보면 애 챙기며 워낙 싸돌아다니느라 바빠서, 자료를 정리를 하고 콘텐츠화할 겨를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우리 부부의 소원은 하루빨리 아들이 커서 함께 캠핑카로 미국 횡단 여행을 하는 것이다. 대체 언제 크냐, 아들?
가끔가다 우리의 주말 동선을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면, 모두가 깜짝 놀라곤 했다. 주위에 우리에 버금가는 여행가들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한결같이,
'애를 데리고 그렇게 다니다니 참 대단하다'
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긍정적이기보다는 왠지 모를 냉소적 향기를 맡았던 건 쓸데없는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반대로 나는 그들에게 '어쩌면 그렇게 집구석에 처박혀있는데도 견딜 수가 있는지'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진짜로 물어봤다가는 내 발언에 부정적인 판단의 향기도 묻어날까 조심스러웠기에, 차마 입 밖으로 한 번도 내본 적은 없지만. 그냥 사람마다 성향이 다른가 보다고 혼자 속으로 결정지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우리 같이 나돌아 다니기 좋아하는 아웃도어 마니아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 주변에만 없었을 뿐이지, 이 드넓은 세상에는 그런 이들이 쎄고도 쎘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그들과 어떤 면에서 경쟁해야 했고, 어디를 가든 한 발 앞서 도착해 있는 그들에게 감탄을 하곤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는 아무도 모를 것 같은 후미진 장소에 어렵사리 찾아가도 이미 수많은 텐트와 캠핑카가 다 세팅되어 있는 뭐 그런?
2020년에 우리는 다른 해에 비해 엄청나게 활동을 줄였다. 물론 비자발적으로 그럴 수밖에는 없는 분위기였다. 코로나 19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곳이 생겼으니 말이다. 원래부터 집콕을 즐기거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자연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이었던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초기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국내여행이라도 나름 다니며, 영혼의 역마살을 조금이라도 풀어냈다. 나름 다른 해보다 줄었을 뿐이지, 평범한 애 있는 가정에 비하면 그래도 한 달에 몇 번씩은 외지에 나가 숙박을 하는 주말여행을 연명했다. 그때마다 놀라운 것은 여지없이, 여행지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는 것이다. 마스크만 쓰고 있을 뿐이지 여느 때보다 딱히 관광객이 줄었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우리처럼 가닥이 있는 사람들은 다 똑같이 여전히 바깥활동을 포기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중, 8월과 10월 한 차례씩 코로나 대유행이 더 터지면서부터 서서히 마음이 위축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 사태가 쉽사리 종식되지 않을 리라는 확신도 그때 받아들이게 되었고,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를 두며 나다니는 것이 어느덧 염증이 느껴졌다. 예전에 오감으로 체험했던 진짜 여행(?)에 비해 무언가 100%가 아니라는 것이 점점 더 선명해져 왔던 것 같다.
그렇게 바깥으로부터 집으로 아주 천천히 몸과 마음의 방향이 이행해갔다. 늦가을 본격적으로 날씨가 추워지자, 추위에 '겁나' 약한 나는 서서히 칩거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돌아 다녀봤자, 예전만큼의 감동이 전해지지 않고, 모든 핫한 일들은 다 랜선에서 일어나는 듯했다. 나도 마음의 주파수를 완전히 온라인 쪽으로 돌렸다.
화이자나, 모더나에서 백신이 곧 나올 거라고는 하지만, 나까지 그걸 접종할 수 있으려면 대체 언제쯤 일지, 까마득하다. 내년 말쯤이라고 한다 한 들, 어차피 내년 1년은 상당 부분 지금의 틀로 삶이 진행될지 모른다. 그러니, 정말로 '그날'이 올 때까지는 집콕 라이프, 칩거 라이프스타일에 적응하고, 이 방식을 온전히 마스터하는 길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마음먹을 때까지가 힘들었지, 막상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집에서 재미있게 할 일들은 지천에 널려있었다. 지금은 연구하고 궁리하기만 하면 다 찾아지는 세상이다. 마음먹기까지가 어려울 뿐.
한 달 정도 SNS에 각종 콘텐츠를 만들고,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고, 관심 있는 채널들을 구독하고, 홈트를 하고, 집안을 꾸미고, 요리에 도전하고, 그림을 그리고, 마크로메를 엮고, 이것저것 계획하는 하루가 정말이지 알차고 신바람 난다. 소셜미디어로 엿보면 비단 나뿐만 아니라, 나처럼 하루를 보내는 이들이 이미 한가득 있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관성의 법칙'은 천지만물에 정말이지 예외가 없는 듯하다. 나가 버릇하니, 나가게 되는 것이었을 뿐, 한번 적응하고 나니, 이제는 도리어 바깥에 나가는 것 자체가 꺼려진다. 이것이 오히려 나중에 패러다임이 바뀌었을 때 부작용이 되어 내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니기를.
아무튼 이로써 내 집콕 적응은 완료되었음을 선언한다. 내게는 기념할만하고 감사한 일이다. 사람은 안 바뀐다고 하지만,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으면 바뀌게 되는 게 사람이다. 내가 바로 그 살아있는 증거이자, 화신이 아닌가!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사람은 안 바뀐다고 감히 입도 뻥끗하지 않으리!
사람은 바뀔 수 있다! 바뀌어야만 되면 바뀌게 되어있다. 나 스스로가 그 말을 증명할 수 있었음에 삶에 대한 깊은 경이와 감사를 느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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