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이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여기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한 명은 삶의 자세가 아주 긍정적인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잘 될 거라고 얘기하며 매사를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고, 대체로 기분이 좋아 보인다.
다른 한 명은 그와는 반대로 매우 시니컬한 염세주의자이다. 이 사람에게는 원숭이는 반드시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며, 어떤 일에든 불안과 걱정이 앞서고, 회의적인 태도로 비판을 일삼는다. 항상 표정이 어두워 보여 어쩐지 말을 붙이기가 힘들다.
자, 당신이라면 이 둘 중 누구와 가까이 지내겠는가?
다소 극단적인 이 두 사람을 놓고 선택하라면 대부분은 긍정적인 쪽을 친구로 삼고 싶을 것이다. 기분이나 태도에는 아주 강한 전염성이 있어서, 멀쩡한 사람이라면 어둡고 침울한 기분을 자초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하는 삶의 태도란, 결국 인생을 바라보는 렌즈의 색깔 같은 것이다. 선글라스를 끼고 바라보는 세상은 한층 톤이 다운되고 어두워 보이듯, 내가 어떤 태도를 장착하느냐가 내 삶에 생기는 모든 일을 해석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긍정의 렌즈로 보면 같은 일이라도 더 잘 풀릴 것만 같고, 해 볼 만한 일로 생각하게 해 줄 것이며, 부정의 렌즈를 통해서는 만사가 다 위태롭고 수틀릴 것만 같이 여기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우리 모두는 그 둘을 양 극단에 두고 기다란 축 선상의 어딘가에 있다. 또한 살아가면서 때로는 긍정적일 때도 있고, 때로는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이 되기도 하며 그 경계선을 수시로 넘나드는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자유 의지와 선택이 주어진다면, 긍정적인 자세를 당장 집어 들지 않을 일말의 이유가 과연 있을까?
존경해마지않는 철학자 빅터 프랭클은 나치 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던 자신의 체험으로 탄생한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외적인 영향과 내적인 환경의 담보물이나 희생물이 아니다. 인간의 자유가 조건에 의해 제한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조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대해 인간은 전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항상 판단을 내릴 자유가 있다."
힘든 상황 앞에 좌절과 원망의 감정이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감정도 인간에게는 숙명이자 원초적인 것이고 말이다. 다만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결정할 재량이 있다. 그 결심의 기로에서 긍정의 렌즈를 끼고 삶을 보기로 선택한다면, 희망과 기대가 언제나 내 편에 서줄 것이며, 밝은 기운을 찾아 모여든 좋은 사람들이 함께해 줄 것이다.
그러니, 현실이 너무도 힘들고 가혹해 도저히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다는 핑계는 대지 말자.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이조차 삶을 긍정할 수 있다면, 그 발끝에도 못 미치는 일상의 시련 앞에서 도무지 긍정적일 여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테니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오직 나를 강하게 할 뿐이다."
위대한 철학자 니체가 남긴 이 말을 나는 생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지향하는 궁극의 명언으로 기억한다. 이 말에는 다음과 같은 정신이 담겨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번 해보겠다!'
'밑져야 본전이다.'
'다 잘 될 것이다.'
어떤 극한의 상황에서 궁지에 몰려도 이런 해탈한 듯 긍정적인 접근 방식이 위기의 구렁텅이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음을 기억하고, 여러분의 일상에서도 적용해가기를 바란다. 이렇게 사는 것이야말로 이번 생에서 우리가 그토록 닿고자 하는 성장과 행복에 더 자주 다가설 수 있는 비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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