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태양

by 에센티아

감사일기 #228_2020년 12월 31일 목요일


지난 한 해 일상에 무수한 행운과 기쁨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저를 괴롭혔던 불운과 걱정과 두려움에도 감사를 표합니다. 그 덕분에 주의를 기울이고 교훈을 얻으며 생존할 수 있었네요.



오늘을 끝으로 저의 30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낮과 밤 사이 그 어느 한순간을 경계로 세상은 20년과 21년으로 나누어지고, 제 나이도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게 되네요. 무심히 여기기에 말이지, 찬찬히 가늠해보면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삶의 모든 일들은 다 그런 것 같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내신 후 사색해보면 신비롭고도 놀랍지 않은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너무 감성적이라 할지 모르지만, 뭐 그러든지 말든지. 그런 감상에 젖어 세상을 더 깊고 섬세하게 음미해볼 수 있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사치(luxury) 이자, 사는 맛 아닐까요!



부드럽게 볼을 스치는 찬바람의 감촉,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라는 생명체가 정말 공기 중에 떠다닌다는 사실도 참 신기합니다. 그런 작은 존재로 인해 지난 일 년 온 세상은 뒤집어졌으니까요.



또 해는 어쩌면 저렇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김없이 지평선 위로 떠오를까요? 물론 과학적 원리로야 지구가 자전하니까라고 건조하게 대답해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지구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도 없을 만큼 티끌같이 작은 존재인 저 한 명이 품고 있는 세계는 얼마나 무한한 시공간인지. 매 순간 기적에 둘러싸여 살고 있으면서도, 부질없는 것들에 쫓겨 아무것도 알아보지를 못하는 것뿐일 테지요.



그래도 한 해의 마지막 날이나 시작일 같은 특별한 날만큼은 그런 것들에 대해 한 번쯤 떠올려 봤으면 좋겠습니다. 어찌어찌 살아도 결국 죽는 날에는 이런 것들이 훨씬 더 의미 있게 다가올 테니까요. 먹고사는 얘기나, 소비하고 공부하는 얘기 따위는 삶 전체와 죽음 앞에서는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일상의 99%는 저도 항상 그런 것들만 생각하며 삽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들은 평범한 일상 앞에서는 항상 그 빛깔이 옅어져 자취를 감추는 것만 같네요.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이 우리에겐 필요한 모양입니다. 인간에게는 숙명 같은 '마지막'을 상기시키는 그런 날. 그리고 '끝'은 반드시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게 되는 대순환의 원리 같은 것.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저 자신을 초월하는 그 어떤 장대한 개념 앞에서 괜스레 감동하게 됩니다.



생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 의욕을 품고 사는 만큼, 저는 마지막에 대해서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해도 사람은 속절없이 문득 떠나버리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그러니 오늘이 갑자기 내 삶의 끝이라 해도, 한 점 후회도 미련도 없이 그렇게 살다 가고 싶습니다.



내일도 어김없이 떠오를 햇살에게 감사를 전하렵니다. 그리고, 오늘은 또 오늘대로 지난날을 회상하고 추억하고 감상하며 아름답게 갈무리하고자 합니다. 2020년 한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부디 아름답게 기억될 한 해였기를 기원합니다. 저에게는 정말이지 꼭 그랬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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