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그토록 아름답게 피어났니?
주말 내내 비가 내렸기 때문에 회색빛 우중충한 하늘을 배경으로 우리 가족은 온종일 집 근처를 떠나지 않았다. 때이른 벚꽃은 만개하여 한껏 절정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떨어지는 빗방울에 차창을 통해서만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더랬다.
코로나19로 웬만큼 유명한 벚꽃 명소는 폐쇄되었다는 뉴스를 보니, 딱히 꽃놀이 갈 의욕이나 기분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집 근처 도로변에 무심하게 줄지어 서있는 벚꽃 나무들조차 유심히 바라보니 아름답기 그지없다. 일부러 멀리까지 나가지 않아도 일상 곳곳에 이토록 예쁜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장관을 이루고 있었구나!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그토록 아름답게 피어났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이 벚꽃나무들과 꼭 같지 않나 싶은 생각이. 저기 저 한껏 주목받는 중앙 무대에 선 사람들이 아니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어떤 후미진 곳에서 모두들 자신만의 꽃 망울을 터뜨리며 고독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것 아닐까?!
수십만이 들려 찾는 진해 군항제나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무심코 지나치며 보는 동네 입구의 벚꽃나무들도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답게 피어있다. 다만 그 아름다움에 걸맞은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
어디에 피어나느냐를 선택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숙명처럼 싹 틔어진 곳에 따라 정해지는 법이라,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한 그루 나무에게도 이렇게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가 보다. 하물며 사람에게는 어떠하랴.
나 하나 진심으로 알아준다고, 외딴길에 외롭게 서있기에는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운 이 벚꽃 나무에게 위안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지막히 속삭여본다.
you deserve so much better than this!
너 한 그루만 지긋이 바라보는 내게는 그 형용못할 고귀한 아름다움이 속속들이 다 보이는구나. 그러니 슬퍼하지 말거라. 속상할 일도 아니다.
이건 설마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속마음이었던 건 아니겠지?
수많은 사람에 치여 정신이 아득해질 화려함에 사로잡히지 않고, 올해는 조용히 집 앞 벚꽃길을 걸으며 그렇게 나는 꽃놀이를 마쳤다. 내 자리에서 나도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아름다움이라도 조금 더 피워보리라. 누군가 내게 조용히 말을 건네는 쓸쓸한 영혼과 어쩌면 잠시잠깐 벗이 될지도 모르니.
까짓껏 인생 그거면 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