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말 못하는 아이에게
아이 키우기 너무 힘든 날 엄마의 속마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좌절과 분노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 무수히도 많다. 하지만 아이를 대상으로 화를 표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엄마들은 혼자서 그 모든 화를 속으로 삭이거나 부족한 자신을 질책하며 죄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고백하건대, 순간순간 나는 아이가 미워 죽겠는 감정들이 불쑥불쑥 솟아올라온다. 너무도 애지중지 사랑하는 만큼 얄밉고 짜증 나는 심정이 솟구친다. 그럴 때면 내가 과연 좋은 엄마 인지 끊임없이 의문이 들며 무너져 내린다. 어떤 날에는 감정이 궁지에 몰릴 대로 몰려 그냥 다 놓고 어디론가 도망쳐 버리고 싶다. 이 모든 상황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할 수 있는 'EXIT' 버튼이 있다면, 그냥 누르고 이 게임을 종료하고만 싶다.
솔직히 내 마음은 가끔 정말 이렇다. 차마 그 누구에게도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이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가장 숭고하고 의미 있는 일임을 안다. 다만, 그냥 가끔은 그 끝도 없는 요구와 이기심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 버겁고 짜증 난다. 내 살을 다 깎아주고 내 피를 다 짜내어 주어도 아이라는 존재는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나 아들이란 존재는 더더더욱. 오로지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채우기 위해 엄마인 나는 그냥 갉아 먹혀야만 할 것 같다. 뼈 한줌 살 한 줌이 남아나지 않을 때까지.
하지만 너는 알고 있니? 한때는 나도 나만 알고 내 한 몸만 챙기고 꾸미면 되는 그런 존재였다는 걸.
니 엄마이기 전에 나는 한 사람의 여성이었고, 꿈과 희망에 가득 차서 온 세상을 다 가지려 했다는걸. 아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내 한 몸이 세상에서 가장 중했다는걸. 누군가를 이토록 몸 바쳐서 조건 없이 사랑해도 된다는 허가증을 얻은 것 같은 엄마라는 역할이 너무도 고귀한 걸 알지만, 사실 조건이 없다는 건 다 '개뻥(?)'이란다.
누구나 조건이 있어. 조건이란 없을 래야 없을 수가 없는 거야. 니가 날 끝도 없이 졸라대며 무리한 요구와 생떼로 괴롭히면 순간적으로 나도 니가 밉고 귀찮아. 아무리 엄마라도 그래. 엄마도 사람이니까. 너를 만족시켜주고 기쁘게 해주고는 싶지만, 그러기 위해 내 행복은 한 움큼도 쥐어 볼 수 없을 땐 엄마도 억울하고 화나. 너도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아무리 니가 어리지만, 이 사실은 너도 조금씩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이런 냉정한 사실을 너무 일찍 알려줘서 미안하지만, 세상엔 조건 없는 사랑은 없는 거야. 내가 널 사랑하는 건 아마도 니가 내 몸의 피와 살로 만들어져 나왔기에 마치 내 분신같이 느껴지기 때문이고, 또 니가 참 귀엽게 생기기도 했고, 또 가끔은 나를 믿을 수없이 행복하게 만들어줘서 인 거야.
다들 자식에게 자신을 투영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런 건 그냥 본능 같은 거라 하지 말라고 안 되는 것이 아닌 거야. 내 새끼라 그런 건지, 객관적으로도 꽤 귀여운 아기라 그런 건지 일평생 분간할 수는 없겠지만, 너 정도면 참 잘생기고 예쁜 아기거든. 내 눈엔 니가 참 그렇게 보여. 그래서 널 사랑하는 거야. 만일 니가 못생겨 보였더라면 솔직히 이만큼 사랑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이들은 다 예쁘다지만, 난 지금도 길거리에 아기들 보면 예쁜 아이, 못생긴 아이 다 구별되거든. 솔직히 Physically 못생긴 아이들도 수두룩해. 근데 내 눈엔 너는 참 예쁘게 생긴 것처럼 보이거든. 가끔씩 그렇게 예쁜 니가 우연히 던지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재미나고 신기해서 엄마는 너무 행복하고 황홀하거든. 그 맛에 너를 키우며 무한한 행복을 느끼는 거야.
그런 순간은 아주 드문드문 일어나지만 그때 느끼는 감정은 너무나도 격렬해서 그 밖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고생스럽고 귀찮은 시간을 다 보상받을 수 있거든. 그러니 엄밀히 따지고 보면 조건 없는 사랑이네 뭐네 그런 건 없는 거야. 다 조건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거야. 엄마의 사랑도 이렇게 다 이유와 조건이 있다는 거 알아둬!
정신분석학에서 어린 시절 조건 없는 사랑을 못 받아서 강한 불안 심리를 갖게 되네 뭐네 한다지만, 이제 내 스스로가 엄마로서 냉정하게 보니 그 어떤 인간이 조건 없는 사랑을 남에게 줄 수 있겠어? 부모 사이, 남녀 사이, 친구 사이, 심지어 신과 인간 사이에도 조목조목 따져보면 다 조건이 있지! 그러니 모든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불안 심리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야. 아이를 낳아보면 다시금 그런 관계의 본질과 사랑의 한계를 깨닫고 받아들이며 세상과 자신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지.
아무튼 나는 오늘 너에게 화가 났어. 평소에도 크고 작게 화가 올라오지만, 잘 표현하지는 않고 넘어가는 수가 많지. 그냥 너는 아직 너무 어리니까,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고, 지금의 이 모든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될 거라 믿으며 내 마음만 쑥대밭이 된 채로 그렇게 지내왔지.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내 인생도 조금씩 쑥대밭이 되어 가는 걸 깨달을 때면 엄마의 유리 멘탈은 와르르 무너져 내려.
너를 특별히 더 잘 키울 수도 없다면, 나는 왜 일도 그만두고 이렇게 전업주부가 되어 널 돌보고 있는 것일까?
차라리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나 하며 가끔만 너를 본다면 차라리 더 낫진 않을까?
그런 생각부터 오만가지 잡 상상을 하며 하염없는 고민과 회의에 빠져 힘에 부치는 그런 날들이 때로는 있단다. 그래도 나는 엄마 일을 멈출 수가 없어. 쉴 수도 없어. 너는 내가 돌봐주고, 키워내야 하는 내 새끼거든. 내 책임이거든. 나는 엄마이니까. ㅠㅜ
이건 형벌인 거니? 아님 축복인 거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답 외에는 다른 수가 없는 문제라면, 생각 따윈 멈추고 그냥 그렇게 또 할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겠지. 언젠가 나는 알게 되겠지. 이 모든 시간이 내 삶에서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그때는 너에게도 묻고 싶어.
나와 함께 하는 이 모든 시간 동안 너는 진정 행복했니?
왜냐면 나는 지금의 너처럼 어렸던 시절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거든. 지금 이 시기가 어쩌면 엄마 혼자서만 용쓰고 투쟁하고 있지만, 먼 훗날 니 기억 속에선 암흑이기만 한 그런 시간은 아닐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만일 그렇다면, 이건 오로지 나를 위한 성장의 시간인 걸지 모르겠어. 육아란 어쩌면 엄마가 자라나기 위한 시험대 같은 건가 봐. 그러니 너는 그냥 잘 자라나렴. 엄마는 좀 더 갈리고 정을 맞아야 크려나 봐.
너랑 나랑 언젠간 같이 커서 함께 대화도 하는 그런 날이 오겠지? 네가 말하는 목소리를 듣는다면 언젠가 엄마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을 것만 같아. 그날엔 오늘 내가 느끼는 이 모든 회한 따위는 죄다 보상을 받은 듯 느껴질 거야. 그리고 마치 선사시대 이야기를 듣듯 아득하게만 느껴질 테지.
분명 그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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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세 살 시절에 쓴 에센티아의 육아 일기입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을 위해 공감과 응원의 마음으로 이 글을 띄웁니다.
에센티아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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