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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센티아 Jul 27. 2021

혼자 있는 시간의 마법

이거면 됐지않나 싶은

아주 오랜만에 완벽하게 혼자만의 하루를 갖는다.

나에게 이런 날은 일 년에 정말로 며칠 있을까 말까 한 귀하고 귀한 날이다.



남편은 지방으로 출장을 갔고, 아이는 방학을 맞아 외가에 놀러 갔다. 너무 홀가분해서 처음에는 어색하기조차 했던 여유. 몸과 마음이 너무 편해도 뭔가 낯선데. 내 하루의 디폴트는 항상 약간 불편하고 다소 불안해하며 뭔가 빠뜨린 게 없나 잘 챙겨야 하는 상태. 그런데 오늘은 정말 없다! 요가조차 가지 않는 날이다.



오마이갓. 이상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라니! 엘리스 in 원더랜드. 마법에 걸린 것만 같다.

© almosbech, 출처 Unsplash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결국 혼자 만의 날들을 깨끗하게 포기한다는 의미였다는 걸 결혼 전엔 결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완전하게 혼자서 있을 수 있는 것이 그토록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사치이며 특권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한때는 그야말로 외로움에 사무칠 정도로 원 없이 혼자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정작 그때는 그 보석 같은 고독의 시간을 누리지도 못 했던 것 같다. 누리기는커녕 주체할 수조차 없어 눈코 뜰 새 없이 스케줄을 메꾸어 넣으려고 안달이었다. 약속 하나를 잡고 그다음 약속을 잡은 후, 그 사이에 또 다른 하나를 끼워 넣었다. 그렇게 해서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피하고 싶었던 것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모든 시도들조차 영영 되돌릴 수 없는 소중한 젊음의 조각조각들이다. 모든 기억은 미화된다. 특히나 나는 그 분야에 아주 탁월하다. 깨끗이 씻겨서 고이고이 닦고 예쁘게 장식해둔 내 추억의 전당에 들어서면 하나같이 예전의 기억들은 눈이 부시고 그리워 마지않는 것들뿐이다. 설사 원래는 구질구질하고 음습하고 우울한 현실의 때가 타 있었을지라도 과거는 언제나 아련하면서도 영롱하게 내게 행복감을 준다.


© gr8effect, 출처 Pixabay


결국 나는 행복 유전자의 수혜를 받은 사람인 건가? 행복감을 더 잘 느끼게 하는 유전자를 가진 이들이 있다 하지 않던가. 설마하니 천성적으로 불안과 걱정이 한가득인 내가 그런 사람일 리 만무하다고 여겨왔건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당시에는 행복감을 온전히 누리지는 못할지라도, 언제나 훗날에 모든 것을 좋게 해석하고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어떤 불행도 상처도 후회도 결국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지어내는 스토리 텔러였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그것도 하나의 능력이라면 나는 이 슈퍼 파워가 꽤나 마음에 든다. 이런 나를 그 누가 무너뜨릴 수 있단 말인가!


© ethanchoover, 출처 Unsplash


물론 나는 쉴 새 없이 좌절하고 걱정하고 후회하고 다그치며 매 순간 나름 피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생을 즐기려고 했던 것 같다. 아주 실오라기 같은 기회의 기미만 보여도 나는 즐거움에 손을 뻗어 닿아보았다. 어쩌면 그래서 아주 조금 더 피로했고 부지런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 모든 삶의 자세에 대해 단 한 톨의 후회도 없다.



주어진 모든 상황에서 나름 내 몫으로 남겨진 삶의 재미를 최선으로 맛보려 했다. 그거면 잘 살아낸 삶이 아닌가! 아직 인생 전체를 리뷰하기엔 현재 진행형으로 살아내고 있는 삶도 창창하다만, 그래도 가끔은 돌아봐야 한다.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걸어왔으며 어디를 어떤 방식으로 향해 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중간 기착점이 지금 무렵이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잘 살아왔노라고. 행복한 인생이라고.

© edznorton, 출처 Unsplash


마흔쯤 되면 삶의 비밀과 신비에 꽤나 정통해 있을 줄 알았지만, 그건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아직도 왜 이토록 흔들리며 겁이 나는지 가끔씩은 스스로도 영문을 모르겠을 때가 있다. 과연 내가 이토록 두려워하고 걱정해야 할 때야? 정체도 알 수 없는 근원적인 존재의 불안함,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



언제나 이러이러한 정도라면 나는 영원히 걱정이 없을 테야...라고 했던 바로 그 레벨.


그 레벨에 도달한다 해도 결코 근본적인 두려움과 걱정은 떨쳐진 일이 없었다. 그저 다시 그 선을 스타트 라인으로 모든 것이 재 세팅되곤 했다. 아마도 죽는 날까지 끝도 없을 것이다.



이 불안과 두려움을 쳐다보고 있지 않기 위해 나는 타인들을 만나 계속해서 얘기하고 확인받으려 할 것이다. 인정받고 공감받고 위안을 얻으려 하겠지. 그래야만 그나마 버거운 존재의 무게감을 외면하며 바삐 지낼 수 있을 테니까. 나 혼자서는 도저히 속일 수 없는 나를 모두가 같이 입 모아 세뇌시켜 주기를 바랄 것이다.



나는 잘 살고 있어. 이 정도면 괜찮은 인생이야. 세상도 나처럼 살기를 원한다.

© pantiumforce, 출처 Unsplash


하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그게 뭐 문제라도 된다는 말인가?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지. 그 속박에서 벗어나 살 수 있었던 자가 대체 이 지구상 어디에 있었기에?



사람이 다 원래 그렇지.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싶다. 칠, 팔 십 넘으신 노인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더 나이가 든다 해서 더 지혜로워진다거나 더 평온해지는 것도 아닐지 모른다. 늙을수록 자연히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마음에 평정이 깃든다고 하는 설도 있지만, 그렇다 해서 뭐 딱히 그것이 부러운 것도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모두 원한다. Forever young.



나는 그냥 뭐 이 이상 더 대단한 도나 진리를 추구하고 싶지도 않다. 여지껏 살아왔던 대로 내게 주어지는 아주 작은 행복의 순간과 기회라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에 맞닥뜨려도 결국엔 다 인생이 무르익는 과정이었고 나름 좋았다고 해석해낼 수만 있다면. 그리고 나는 잘 살고 있다고 그렇게 믿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괜찮지 않나 싶다.

© vivalunastudios, 출처 Unsplash


이렇게 혼자만의 완벽한 자유를 갖는 것도 딱 내일까지 뿐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진정 이 시간을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지도 모른다. 곧 끝이 날 거란 걸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고독이 너무도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삶은 반드시 죽음으로 귀결이 날 터이다. 그 때문에 살아있음이 더더욱 소중하고 달게 느껴질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러기엔 우린 조금 오래 사는 것 같다.


© vivalunastudios,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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