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좀 하시라구요!

스팸에 욱하던 심리의 본질은 소외감이었다

by 에센티아

분노의 본질은 소외감이었다_1

아주 작은 일에도 불같은 분노가 일고, 사소한 일에 욱하게 된다면 그건 분명 뭔가 마음 어딘가가 고장 난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감정은 조금만 더 깊이 파고들면, 내면에 조금 색다른 원인이나 이면 감정이 있기 마련이다. 오늘 나는 어떤 작은 사건으로 인해 울컥하는 마음속에 있던 조금 더 본질적인 감정과 마주할 수 있었다.




요즘 연일 인터넷 약정이 만료되었는데, 다른 것으로 갈아타지 않겠냐는 스팸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오전 11시쯤이 되면 일제히 핸드폰 발신 번호로 3 통화 정도가 연속으로 걸려오고 있는데, 그동안은 그냥 아무 말 없이 바로 끊어버리곤 하였는데, 오늘따라 엄청난 짜증이 몰려왔다. 수신 차단에도 한도가 있지, 내 전화번호가 어딘가를 통해 뿌려진 것일까? 나도 모르게 욱하는 마음에 두 번째로 걸려온 스팸 전화의 발신자에게 한바탕 퍼부어 주었다.


"그만 좀 하시라고요!"


애꿎은 그 콜센터 직원은 별 잘못이 없이 내 짜증 화 받이가 된 것이다. 버럭 소리를 높이고 끊고 났는데도 화가 진정되지 않는다. 분노는 더욱더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더니만. 이게 그런 것인지. 그 스팸전화를 건 사람도 그 직업을 하자면 그런 반응은 어느 정도 감수하고 하는 일이겠으나,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팟빵을 듣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려 받아보면 스팸이고, 누군가와 만나 커피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또 받아보면 스팸이고, 설거지하다 뛰어와 받아보면 스팸이고 하면,

이건 정말 귀찮다 못해 기분이 심히 '더러울 때'가 많다.


그런 연락이 상당히 유용하다고 여길 누군가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건 뭐 해당되지도 않는 이에게 그냥 랜덤으로 돌려보는 싸구려 DM(Direct Marketing) 방식이 아닌가! 이것이 과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마케팅 방식일 거라고 기대를 하는 것인지.


하지만 곰곰이 돌아보면 내가 정말로 울컥하고 분노를 뿜어낸 것은, 아마도 이 하찮은 스팸 전화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본질은 아마도 고작 스팸전화 밖에는 걸려오지 않는 지금의 내 상황이 아닌가 싶다.


SE-bc8a2057-a68f-413b-8647-9f91ed0b4cbc.jpg © xps, 출처 Unsplash


언젠가부터 여기저기서 오는 연락도 없고, 전화로서의 기능은 아주 최소한만 하면서 검색이나 방송 듣기, 음악 듣기의 기능만이 절대적인 내 휴대폰이 아마도 내 이 분노의 진정한 원인은 아니었을지.


현대 사회에서 찾아주는 이 없는 연결되지 않은 인간이야말로 그 존재 가치가 낮고 소외되어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다들 바쁘다 바쁘다 말버릇처럼 내뱉지만 실은 그토록 바쁜 자신의 상태를 자신의 존재 가치와 동일시 여기며 은근히 즐기고 또 떠벌이고 있는 것일지니.


비록 내가 방어박을 철벽같이 치고 이어가지 않고자 선택한 것이긴 하나, 그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자격지심 같은 것이 이 스팸 전화에 대한 역정으로 표출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오로지 마케팅의 대상, 소비의 주체,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돈을 짜내는 돈주머니로서만 이 세상이 나의 존재가치를 인정해주는 것 같아 울컥했던 것일지 모른다.


photo-1563207153-f403bf289096.jpg?type=w1 © lenin33, 출처 Unsplash


그러므로 스팸에 대해 버럭 화를 내는 사람에 대해서도 갑질이라고 비난하기보다는 웬만큼의 이해와 공감이 갈 수밖에는 없다. 뭐 저런 아무것도 아닌 일에 흥분을 하냐고 할 수도 있고, 벌어먹고 살아보고자 열심히 전화를 돌리는 마케터의 입장에서는 다른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당사자의 상황과 입장에 대한 단 한 움큼의 배려나 이해도 없는 무차별적 랜덤 마케팅은 그저 시간 낭비이자 소음일 뿐인 것이다.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이따위 세련되지 못한 무차별적 랜덤 마케팅 방식은 서서히 없어질 것이라 믿는다. 이미 타깃 마케팅이라는 개념은 30년이 넘도록 학계나 산업계에서 주창되었는데, 빅데이터의 분석이나 각종 정보 수집이 오늘날만큼이나 정밀해진 사회에서 이런 허술하고도 시간 낭비적인 스팸 마케팅이 웬 말인지.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부동산에서 항시 걸려오는 아파트 입주자 명단 수집 및 확인을 위한 전화도 참으로 눈물겹게 손과 발로 수집되는 것 같다.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집주인의 연락처 및 정보 확인도 아직 일일이 전화를 돌려봐야만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아파트 분양권을 가지고 있던 지난 2년간 나는 각종 부동산에서 셀 수도 없는 스팸전화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


우리의 리얼 라이프란, 결코 현대 사회가 그토록 주창하는 마케팅 이론과 패러다임과는 먼 거리가 있는 법인가.

photo-1592439120548-78ea7b42398e.jpg?type=w1 © morningbrew, 출처 Unsplash





4차 산업이다, 빅데이터다 하며 어떤 면에서는 최첨단 기술이 우리 삶에 적용된 듯해도 삶의 세세한 영역의 전반은 여전히 구시대적 방식, 매뉴얼로, 휴먼 터치로 돌아가는 부분이 허다하다. 미래에 없어질 직업이 어쩌고 하지만, 어쩌면 10년 후에도 여전히 버젓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엄청나게 빠를 것 같은 변화가 의외로 더디기도 하다는 것도 삶의 인사이트를 주는 인식의 큰 함정이다. 변화, 변혁하며 당장이라도 모든 것이 바뀔 것만 같지만, 실은 개개인의 일상생활 속에까지 그것이 다 스며들기에는 의외로 시간이 걸린다는 것.


세상이 너무 바삐 급하게 모든 것이 다 바뀌는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내 급진적 인식에 살짝 고삐를 죄는 큰 깨달음이었다.



#세상살이 #싫은건싫다 #황당한사건 #까칠하게살기 #단호하게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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