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댓바람부터 기분이 찜찜한 말을 들어 기분이 언짢았다.
전부터 아이를 입학시키고 싶어 대기 신청해 두었던 유치원에서 당첨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연히 지나가다 마주친 옆집엄마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한다는 첫 마디가 대뜸 이랬다.
"어그래요? 잘 된 건가요?!"
별 악의나 특별한 의미가 없을지 모르는 그 말이 왠지 마음에 걸려 찜찜하고 복잡한 심경을 남겼다.
내가 사람들에게 기대했던 말이 아마도 "어머, 축하해요, 잘됐네요!" 같은 것이었나 보다.
"아니, 예의상이라도 축하를 해주지는 못할 망정, 대체 왜 그런 말을 한 거지, 그 여편네는?"
우리는 모두 뭔가 항상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상대로부터 원하는 피드백을 정확히 알면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막상 상대의 떨떠름한 반응을 확인하고 나니, 내가 애당초 듣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가가 더욱 명확해 진 것이다.
사업을 하거나, 판매를 할때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상대방과 대화를 하니 그렇게 하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상에서 우리는 그렇게까지 싸이코패스처럼 치밀하게 말하고 살지는 않는다. 그렇게 했다가는 우리 모두 신경 쇠약증에 걸려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이다.
살면서, 딱히 뭘 기대하거나 의도하지 않고 얘기를 하거나 행동을 했다가, 상대가 보인 예기치 않은 반응이나 피드백에 당황하거나 기분이 언짢아 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고 나면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내가 원하는 것이 도리어 뚜렷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 내가 원하는 것은 내 말에 대한 호응이나 공감이었구나!'
'마음에도 없는 형식적인 대화보다는 지금 내게는 따뜻한 위로나 진솔한 대화가 필요하구나!'
어떤 사안에 대해 불안하거나 확신이 들지 않는 감정 상태에 있을때, 여간 가깝거나 신뢰감이 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예 털어놓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항상 긍정적이고, 열린 마음의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나 스스로도 불안하고 불확실하게 생각하는 문제라면, 괜히 말을 꺼냈다가 더욱 그 불안을 조장하거나 기분 만 언짢아 질 수도 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나에 대해 잘 알고있고 애정을 가지고 있는 지인과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좋은 대답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마음이 무겁고 조바심이 나고 불안하다 해도 아무에게나 그 마음을 흘리는 일은 삼가해야 하겠다. 별다른 의도 없이 잘못된 대화 상대에게 말을 툭 던졌을때, 예상치도 않은 날벼락을 맞을 수도 있기에.
물론, 그 사람이 내 인생에서 그리 중요한 존재는 아니기에 시간이 조금 지나면 으례 다시 본연의 페이스를 찾고 회복이 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애당초 그런 일을 만들지 말고 쓸데없이 소모해야하는 감정과 시간을 줄이는 편 이 훨씬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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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에 그런 불행한 사태를 방지하면 좋았겠지만, 행여나 무심결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면, 타인의 반응에 동요하는 내 마음과 생각을 찬찬히 잘 직시해 보자.
내가 오늘 유치원 당첨 소식을 알렸더니 상대가 축하는 커녕, 그게 잘 된 일이냐고 의아한 듯 말했을때 내 기분이 상했던 것은, 아마도 나 스스로가 그 사실에 대해 온전히 기쁘고 잘된 일이라는 확신이 부족해서 였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두뇌에 거울뉴런이란 것이 있어, 서로가 서로의 표정과 반응을 보며 감정이 전이 되거나, 강화되는법이다. 나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일이니, 상대가 "축하한다"라고 하면, 그 반응을 보고서 나도 '역시 잘 된 일이었어.'라고 안도감을 얻게 된다. 반면에, 타인이 "그게 잘 된일인가요?"라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 덩달아서 나도 '이건 그다지 잘 된 일이 아닌 걸지도 몰라' 하며 우울한 마음이 들어 버리는 것이다.
세상 천지에 항상 강철같은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그 어디에 있으랴. 감정이라는 것은 항상 상호작용하는 타인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닐까? 다만, 살아가면서 언제까지나 타인의 반응에 휘둘리며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아니, 그러고 싶지가 않다!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점점 더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주관을 가지며 책임을 질 줄 안다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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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축하는 해주지 않고, 그게 잘 된일이냐고 되묻던 그녀에게, 살짝 그녀의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는 거북한 감정이 순간적으로 훅 올라 왔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건, 내가 내린 선택이 과연 좋은 결정이었는지, 스스로도 불안했던 내 심사를 그녀의 말이 건드렸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도리어 내 스스로가 당첨된 사실이 너무 기쁘다는 확신과 만족감이 있었다면,
"그럼요!제가 여기 당첨되기를 얼마나 바랬다고요!"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뭐든지 내 스스로가 자신이 없고 확신이 들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타인의 반응이나 피드백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 반응을 거울 삼아 비추어 내 감정의 튠(tune)을 맞추게 되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그렇게 타인의 반응에 동조하여 강화된 믿음은 그야말로 한낱 바람앞에 촛불 같은 것이다.
또다른 반응이나 상황이 오면 또다시 불확실해지고 또다시 불안해 지는 일이 계속된다. 내 안에 확신이 있고, 내 스스로가 결정한 것은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다른 사람의 반응을 크게 개의치 않는 건강한 무신경함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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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쓸데없이 감정이나 의지의 소비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나에 대한 신뢰가 있는 사람이 아닌 한 섣불리 타인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의연함을 갖추는 것이 좋다. 확신이 없을 수록 외부로 부터 확신의 말을 더 갈구하는 법이다.
아리까리 할수록 남들이 '그게 맞다'고, '잘했다'고 얘기해 주기를 도리어 기대하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누군가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을 찾아 그런 말을 들을 때까지 질척거리며 기웃거리게 될 뿐이다.
어른이라면, 내 스스로가 내게 동조해주고 확신의 말을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모든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겪어나갈 사람은 온전히 나 자신이니까. 그게 바로 진짜 어른이다.
아마도 아침에 만난 옆집여자는 내가 한 말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이 여자가 왜 이러나'를 애당초 탐구해 볼 가치 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확신이 없던 나 혼자서 만
'왜 거기 당첨된게 잘 된 일인가요 라고 묻지?'
'당첨이 됐다는 건, 예의상이라도 으례 축하를 해주는게 상식이 아닌가?'
'혹시 그 유치원은 별로 인데 거기 당첨 된 것이 무에 좋은 일이냐는 것일까?'
'정말로 문자 그대로 자신은 유치원에 대해선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어 질문을 던진 건가?'
심지어 신경과민의 지경에 이르르면
'이 여자가 혹시 나를 싫어했던 걸까?'까지.
(이 지경에 이르르면 거의 사이코 수준이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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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나는 당첨된 유치원으로 아이를 옮기겠다는 선택을 이미 내렸고, 누가 왈가왈부하든 이제는 괘념치 않기로 결심했다. 결국 유치원에 다닐 당사자는 우리 아이이고, 보낼 사람도 엄마인 나 이니까. 우리가 앞으로 잘 적응하며 어떻게 해나갈지가 다른 이들의 생각이나 반응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내가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고 잘 모르는 상태라면 무턱대고 타인을 통해 그것을 확인받으려 하지 않으련다. 타인이 내게 보이는 반응을 통해 전이되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차원으로 한단계 더 성숙하고 진화해 가고 싶다!
'아무리 그래도 그 옆집 여자는 조금 꼬인 것 같긴 했어!
그냥 잘됐다고 말해주면 어디 덧나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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