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이 젖 한번 더 물리는 진실의 이면

분노의 본질은 소외감이었다

by 에센티아

세상 일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돌아간다면 참 좋겠지만, 내가 사는 세상은 결코 그랬던 적은 없었다.

큰소리 내지 않고, 차분하게 순서를 기다리며, 흥분하거나 화낼 필요없이 우아하게 살고 싶은게 내 소망이다.


하지만 살면 살수록 내 소망은 한낱 부질없는 바램인 것 같아 서글퍼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점진적이긴 하지만 큰틀에서 조금씩 더 선진화 되어가고, 원칙이 통하고, 공정하게 돌아가고 있다. 2, 30년 전 보다는 분명 지금의 세상이 더 질서 잡히고, 체계적으로 되어진 것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으리.




동남아나 중국 같은 나라에 가보면 아직도 카오스 적이고, 원칙도 뭣도 없이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 걸 보면 분명 그런 나라들 보다는 한국은 양반인게 맞다. 하지만 여전히 일상속에서 상식이나 원칙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 맞딱뜨리게 될때면, 이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근절 되기 어렵겠다 싶은 것들도 많다.


세상이 나아지면 무엇할 것이여!

나 살아 있는 동안에 될 일이 아니라면 나는 그 룰의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지 않는가 말이다. 살짝 억울한 마음, 절망적인 심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럴때 나의 유일한 위안은 일제 시대나 한국 전쟁과 같은 최악의 시대에 이 땅에 태어난 탓에, 부당하고 어쩔 수 없는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냈을 이름없는 가상의 그 누군가에 빙의해 보는 일 뿐이다. 아니면 동시대를 살면서도 몇 백년은 뒤쳐진 이념의 희생자로 사는 아랍이나 아프리카의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거나.


말도 안되는 일을 이겨내는 최상의 방법이

'그래도 내 상황은 낫다'

...라고 정신 승리를 해보는 일 뿐 인 것이다.


조금만 더 분개하고 열의가 드높았다면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사회운동에라도 뛰어들고 정치에라도 나서겠지만, 그럴 용기나 열의, 그리고 능력도 없는 자라면, 상황을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마음을 달랠 수 밖에.


그걸 위해 정신 승리만한 것이 있겠는가!

살기 위해, 계속해서 살거 라면 말이다.

아~ 처절하도다! 이토록 생존에 연연하는 레벨의 삶이 라니.




내가 가끔 분노를 느끼는 일이 있다면, 아직도 내가 사는 이 한국에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라거나,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원칙이 버젓이 통한다는 사실이다. 정말 그런 일들이 없기만을 바라지만, 지금도 눈앞에서 한 건이 벌어 졌다.


두어달 전에 벽지 하자 보수를 받기 위해 아파트 A/S 센터에서 인부가 왔고, 작은 방 벽에 구멍을 뚫어 단열재 폼인가 뭔가를 잔뜩 쏘아 놓고 갔다. 문제는 도배 전문 기사는 따로있어 추후에 약속을 잡아 방문 할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벽지를 다 헤집어 뜯어놓은 상태로 그냥 갔다는 것이다.


나는 성격도 참 이중적인 것이, 어떤 일에는 엄청나게 조급증을 내면서도, 또 어떤 일들에는 무던하기 그지 없어

때가 되면 오겠지라는 상태로 그렇게 두달을 방치했던 것이다. 딱히 친정 식구들 외에는 손님이 집에 놀러 온 일도 없었고, 작은 방은 어차피 드레스 룸으로 쓰고 있었기에 나만 그 어글리한 벽이 거슬리지 않으면 큰 피해는 없었던 것도 한 몫했다.


그런데 지난주 두달 만에 뜬금없이 도배기사 한테 연락이 와서 집에 들였더니, 장롱을 치워놔야 도배가 가능하다고 해서, 퇴근한 남편을 시켜 어찌 어찌 고생 고생 장롱을 들어내 놓았다. (그 작업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덕분에 장롱에서 빼놓은 엄청난 양의 옷들을 옆에 있는 서재에다 다 널부러 놓아야 했고, (도배가 끝나면 다시 옮겨서 넣어야 하니까) 그 상태로 나흘간 정신 사나운 환경에서 두 방을 쓰지 못한 채 불편을 겪고 있었다.

이유인 즉슨, 장롱을 치워 놓으라고 지난 금요일에 말하고 간 도배기사가 계속해서 다른 하자 보수 스케줄에 밀려 우리 집에 와주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남을 쪼아대는 일에 서툴고 치밀한 성격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도배 기사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 스트레스를 줄려 치면, 내가 먼저 지례 스트레스를 받기에 어제까지는 그냥 기다렸다. 게다가 그 기사님은 다소 수줍어(?)하는 듯한 강한 성격의 스타일도 아니어서 종용하면서 도리어 내가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분이었다.


이번 주 중에는 반드시 해결해 주겠다고 하기에 그냥 믿고 기다리려다, 목요일까지도 연락이 없기에 전화를 해봤더니, 내일까지는 스케줄이 꽉 잡혀 다음주나 되야 스케줄을 잡을 수 있다고 딴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미안한 듯한 뉘앙스로 얘기하면서)


어우씨~ 이게 무슨 말이래. 옷더미 때문에 집안을 다 뒤집어 놓은 상태인데, 다음주까지 이 상태로 기다려야 한다고?


그 기사님 말로는 한 시간 정도면 끝날 작업이라고 했는데, 그 한 시간 짬이 안나서 우리 가족은 이 쓰레기 같은 환경에서 사 나흘을 더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순간 이건 다 무르고 방치하고 있던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훅 올라왔다.


해준다면 해주겠지.

될때 되면 되겠지.

살면서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는 일들이 가끔 있었는데, 이번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순간 나에게 스트레스가 와도 어쩔 수 없다는 판단에, 도배 기사에게 살짝 쌀쌀하게 경위를 따지고, 내 상황에 대해 토로했다.


'아니, 시간을 정확히 약속해서 수리를 하러 와야지 무슨 기사님 개인 스케줄에 입주민이 맞춰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냐'

이번주 중에 오기로 했으면 와야지, 장롱도 다 빼놓았는데, 이 상태로 어떻게 더 며칠을 있으라는 것이냐'

'사전에 스케줄도 제대로 확인 하지 않고 왜 장롱을 빼 놓으라고 하셨냐'


말하고보니 참 맞는 말 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맞는 말을 하면서 내가 도리어 죄책감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무책임하고 제대로 일이 돌아 가지 않는 곳으로 인한 피해를 받으면서, 당당하게 요구를 하는 것인데도, 그냥 내가 좀 더 참으면 되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드는게 싫단 말이다.


나는 엄마다! 나는 우리 가족을 위해 워리어 아줌마가 될그라구!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파워플한 그 한마디!

모든 상황을 한번에 정리하는 그 말을 하고야 말았다.

'책임자 나오라구 해~!'


진짜로 한 것은 아니고, 도배 기사님이 자기는 전권이 없다하기에, 전권이 있는 분하고 직접 얘기 하고 프다고.

결과는, 확인하고 전화 드리겠다고 하더니, 30분 뒤에 바로 다른 여자분한테 연락이 오면서, 내일 오후로 스케줄링을 해준 것.


아니, 이게 뭐야!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던 거야?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을 나흘째 저 난장판으로 둔 채, 마음 만 졸이고 있었다니!

충격적이었다!


살면서 몇 번 이런 엇비슷한 일들이 있었지만, 역시나 또 일어나고 만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씁쓸하고 서글픈 느낌도 들었다. 사람의 말을 믿고 차례를 인내심있게 기다리고 있으면 일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마음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여실히 반증하는 이런 일상의 경험들.


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자꾸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원칙대로, 순리대로 무언가를 해서는 피해자가 되거나 루저가 될 것만 같아 불안해 진다.


나는 오늘 또 하나, 세상을 불신하고, 사람을 의심해야 할 부정적인 경험 한 가지를 더 한 것이다.

이 더러운 놈의 세상.

내 것을 챙기기 위해 항상 경종을 울려줘야하고, 처음부터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고 강경해 보이거나 무르게 보이지 않아야만 한다면,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피곤하고 고달픈가 말이다.


물론 세상에는 제대로 돌아가는게 훨씬 많고, 항상 긴장하고 주시하며 살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살 한 살 먹으며, 자꾸 부정적인 경험들이 축적되다보니, 자라보고 놀란 가슴에 솥뚜껑 보고 놀라는 마음이 커지는 것도 어쩔 수는 없는 듯하다.


인간의 뇌는 10만년 전에서 일도 진화를 못한 탓에, 부정적인 기억과 경험에 미리 호들갑을 떨며 반응하고 대비하기 마련이니까.


© tetrakiss, 출처 Unsplash

진작부터 내가 더 까다롭게 굴었다면, 하자 보수를 이미 다 끝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한도 끝도 없이 기다리고 만 있으니, 나보다 더 클레임을 걸고 따져오는 사람들을 먼저 처리해 주느라, 내 순번은 밀리고 또 밀렸던 것은 아닐까. 진실이 어찌 되었건 내게는 또 한번 이런 못된 신념과 믿음의 사이클이 강화되어 버리는 것이다.


"울어대는 아이 젖 한번 더 물린다"

제기랄, 앞으로 미친듯이 울어 대겠어.

바늘보다 더 까다롭게 굴어 버리겠어.

뭐 이런 식으로.


하지만 여전히 내게는 그런 식으로 사는게 피곤하게 여겨지고 싫다. 조금 더 유리한 결과를 초래할 지는 모르나, 감정과 에너지의 소모는 무척이나 클 것이다. (헉 아니면 어떡하지? ) 그리고 긴긴 인생 전체로 볼때는 별 차이 없을 지도 모른다.


다만, 문제와 갈등에 부딪히고 직면하는 것을 피곤하게 여기고 두려워하는 내 자세는 좀 고쳐야 할 것 같다. 우리 사는 삶의 디폴트가 이런 거라면, 당당하게 요구 할 것들을 피해를 보면서까지 참고 있는 것도 참 어리석고 쓸데없는 오지랍 일 수도 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하기가 싫어서, 내가 정작 사랑하는 이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바로 내 가족,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이다. 요구할 것을 정당히 요구하는 것이 도리어 정의롭고, 원칙과 상식이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작은 기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cadop, 출처 Unsplash




여기 A/S센터 일하는 방식 진짜 개선해야해.

주민들이 전화해서 이상한건 이상하다고 해야 위에서도 좀 고칠 노력이라도 해 볼지 모른다. 앞으로 살면서 조금씩 더 깐깐하게 굴려고 노력해 보자.


아니, 내 기준에서나 '깐깐'이지, 정당하게 요구할 것을 요구해 보는 것이다!


© franckinjapa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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