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를 이겨낸 서정적 연주의 감동
3월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각 장애 피아니스트 츠지이 노부유키의 피아노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츠지이 노부유키는 선천성 소안구증으로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캄캄한 시야의 장벽을 넘어선 피아니스트다. 어렸을 때는 점자 악보를 보며 곡을 익히기도 했고, 최근에는 주로 왼손과 오른손을 따로 녹음한 음원을 듣고 곡을 익힌다고 한다. 한 곡을 수없이 반복해서 들으며 통째로 외워버리고 곡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음악을 들으며 이미지를 상상한다고 한다. 남들보다 수십배의 노력을 하는 셈이다. 사람들은 노부유키를 가리켜 '기적의 피아니스트'라고 한다.
이날 연주는 대단했다.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5번'으로 시작해서 쇼팽의 '즉흥 모음곡'과 '즉흥 환상곡'을 거쳐 드뷔시의 '판화', 라흐마니노프의 '악흥의 순간'으로 갈수록 노부유키의 서정적인 선율은 감흥을 더했다.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속주로 연주하는데, 대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건반을 두드리나 싶었다. 앵콜곡도 세 곡씩이나 하며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날의 절정을 이룬 앵콜곡들이 끝나자 꽉찬 객석에서 끝없는 박수가 나왔다. 노부유키는 유난히도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또 했다. 그만큼 감사했던 것 같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시간이었다. 연주회장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같은 감동의 마음이었을 것 같다.
노부유키가 이번 연주회를 앞두고 했던 말이다. "음악은 장애의 유무로 구별되지 않아요. 누구든 하나가 될 수 있는 수단이죠. 그러니 무조건 즐겁게 해내길 바랍니다."
전날에는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를 보다가 마지막에 노라(나영)가 해서와 헤어지고 남편 아서의 품에 안겨 흐느끼며 참고 참았던 슬픔을 터뜨릴 때 울컥했다. 어제는 노부유키가 마지막에 또 울컥하게 만들었다. 나이가 들었나 보다.
[프로그램]
J. S. Bach: French Suite No. 5 in G Major, BWV 816
F. Chopin:
Impromptu No. 1 in A-Flat Major, Op. 29
Impromptu No. 2 in F-Sharp Major, Op. 36
Impromptu No. 3 in G-Flat Major, Op. 51
Fantasy-Impromptu in C-Sharp Minor, Op. 66
C. Debussy: Estampes
S. Rachmaninoff: Moments Musicaux, Op.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