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창선 Dec 11. 2017

고통을 견뎌내는 버팀목

유창선 지음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후기

철학자 이종철 교수께서 내 책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에 대한 후기를 페북에 올려주셨다. 이 선생님은 대안연구공동체에 공부하러 다니던 내가 강의를 들으면서 인연이 되어 알게 되었는데, 제대로 된 후기를 써주셨다. 제법 시간도 들이셨을 정성스러운 후기의 좋은 말씀에 감사드린다. 글 자체가 함께 읽으면 좋을 훌륭한 인문학적인 글이라 생각되어 그대로 옮긴다. 저자로서는 정말 내공이 깊은 귀한 후기를 만났다. 

-------------------

시사 평론가로 활동하는 유창선 박사의 두 번째 인문학 책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사우)를 받아 보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새빛)라는 책이 나온 것이 1년 전인데 벌써 2권 째이다. 이제 이제 그는 시사 평론가라는 직업 말고도 본격적인 인문학 저술가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책을 들추어 목차를 보니 12개 되는 주제들이 다 만만치 않다. 문학과 철학을 넘나 들며 쉽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쓴 것이다.


01 고통을 이겨내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02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03 소속되지 않을 자유- 프란츠 카프카, 『성』

04 애도를 통해 다시 태어나는 나 -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05 우리는 왜 영웅과 강자를 원하는가 - 루쉰, 『고사리를 캔 이야기』

06 삶의 품격을 배우다 -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07 왜 이토록 불안한가 - 프란츠 카프카, 『변신』

08 내 안에 얽혀 있는 선과 악 - 빅토르 위고, 『파리의 노트르담』

09 지금 다시, 휴머니즘- 호메로스, 『일리아스』

10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는 것일까-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11 사유하는 정치적 삶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12 나를 배려하는 기술 - 미셸 푸코, 『주체의 재해석』


일단 이 목차만 본다면 범상치 않은 저자들과 고전들의 무게에 주눅이 들지도 모르겠다. 연말에 술마실 자리도 많고 처리해야 할 일도 산적해 있는데 이 무거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그런데 전작과 마찬가지로 나는 230페이지 가량 되는 이 책을 단 몇 시간 만에 다 읽었다. 내가 특별히 책을 잘 읽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목차가 주는 중압감에 쫄지 않고 읽어 나간다면 충분히 흥미와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쌓아 놓은 내공 때문인지 필자는 고전의 무겁고 진지한 문제들을 쉽고 명료하게 풀어헤치고 있다. 사실 복잡한 문제들을 쉽게 정리할 수 있는 것은 큰 미덕이다. 쉬운 것을 오히려 어렵게 만드는 것이 인문학인 양 똥폼 잡는 경우가 적지 않은 현실을 볼 때 더 그렇다. 일찍이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행태를 '파리통 속에 빠진 파리들'로 묘사하면서 철학은 그것을 벗어나게 하는 방법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물론 이 책은 제시된 문제들에 대해 해법보다는그것들이 나의 문제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짧고 흡입력이 높은 필체가 이 책의 가독성을 높이는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책을 읽어 나가는데 이런 문체의 역할은 매우 크다. 아마도 이런 문체는 늘 대중들과 호흡하면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야기를 하고 글을 쓰던 습관에서 자연스럽게 배인 것인지 모른다. 게다가 필자는 고전을 막연히 읽거나 소개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해석과 소개는 오히려 그 방면의 전문가들이 더 잘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는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상적 삶에서 매일 매일 부닥치는 실존적 고민들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고전을 읽기 시작한다.


나는 자신의 체험과 관련해서 주체적으로 고전을 읽는 것이야말로 고전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자 고전의 정신을 가장 잘 살리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이런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그럴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고, 그 문제를 늘 해오던 방식대로 외면하기 보다는 적극 대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문제와 부닥치려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일찌기 독일 철학자 헤겔도 철학을 하는 데는 무엇보다 '진리를 향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짧은 글에서 이 책의 12가지 주제들을 다 다룰 수는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직접 책을 들춰보고 읽어 나가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 필자의 고전 읽기를 살펴보자. 이 책은 처음에 '고통'의 문제를 다루면서 니체를 이야기한다. 사실 고통은 삶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버거운 문제이기도 하다. 정치 평론 관련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필자는 한 때 잘나가다가 보수 정권으로 바뀌면서 여러 미디어에서 거부당한 경험을 토로한다. 직장으로 치면 해직된 것이고, 환경의 변화로 인한 것을 감안한다면 IMF 시절의 대량 해고와도 같은 청천 벽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부닥치면 누구라도 좌절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는 이런 팽개쳐진 삶 속에서 고통과 고독, 그리고 카프카의 성 밖의 주민이 느끼는 경험을 뼈저리게 내면화하려 하고자 했다. 위대한 인문학은 대개는 이런 고통과 고난 속에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주역>의 저자도 이런 고통을 알았고, 보에티우스가 <철학의 위안>을 썼던 것도 사형선고를 기다리던 감옥 속에서였다. 사마천의 <사기> 역시 치욕적인 궁형으로 죽음 대신에 완성한 책이다.


필자의 니체 읽기는 이런 고통을 견뎌내는데 커다란 버팀목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따지고 보면 삶의 무게를 견디면서 외로움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모종의 권위에 귀속되거나 영웅들에 영혼을 내맡기려는 유혹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을 생각하고, 품격 있는 삶을 찾고자 하는 인문학의 정신도 이런 역경 속에서 마련될 수밖에 없다. 오늘 날 유행처럼 번지는 인문학의 열기는 당의정 처럼 잘 포장된 강연들을 쫒아 다니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는데 잘못 가도 한 참 잘못 가고 있다. 그런 강연들은 정신을 피동화하고 노예화하는 지름길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참다운 인문학의 정신은 자신의 고독 속에서 주체성을 견지하고 문제를 찾아가려는 데서 더 살아 있을 수 있다. 그 점에서 나는 책읽기가 훨씬 중요하다고 보는데, 헤세나 카프카, 루쉰과 플라톤은 다 이런 맥락에서 읽힐 수가 있겠다. 그들은 한결같이 생각하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삶은 고립화되고 파편화된 개인에게서가 아니라 깨어 있는 정치적 삶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이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필자가 이 책의 마지막에 푸코의 만년의 사상을 다룬 '주체의 해석학'을 배치한 까닭도 비슷한 맥락에서 추정해볼 수 있다고 본다. 결국은 다시금 자신의 내면 속에서 자기를 배려하는 일로부터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파레시아)가 나오고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필자의 이런 책읽기 방식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깔려 있기도 하다.


개인적인 인연으로 유박사와 여러 차례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왜 그가 종편의 투사형 평론가들과 다르게 조용하고 조근조근하게 이야기하면서도 그렇게 인기를 모으고 있을까라는 이유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삶에 대한 그의 깊이 있는 통찰과 사유, 자기만의 스탠스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데, 아마도 이런 것들이 뒷받침이 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나는 그를 내 강의실에서 만났지만, 이제 나는 그의 책에서 그만의 독특한책 읽기 방식과 글쓰기 방식을 배우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 이것이 내가 서슴없이 그의 책을 다른 이들에게도 일독을 권해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예스24 안내 https://goo.gl/M3b5Cz


작가의 이전글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후기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